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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Jul 06. 2023

결혼, 반대한다고 안 할까

결혼 대기 중입니다 - 2

당연히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 내가 인생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을 반대한다. 여기서 오는 심리적 타격이 굉장하다. 울고불고 속상해하는 것은 잠깐이오, 나는 이 과정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니 내가 부모라면 반대하겠다 싶은 납득 불가한 사항들을 한번 따져본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가?

알콜, 마약 등 중독자인가?

폭력적인가?

본인이 빚이 있는가?

집에 빚이 있는가?

유부남인가?

미혼이지만 아이가 있는가?

이혼했으며 아이가 있는가?

무직인가?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가?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 외 경제적인 부담이 될 조건이 있는가?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신적,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가?


개인의 선은 모두 다르다. 아이가 있는 돌싱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고모가 그렇게 결혼하셔서 몇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무직이고 소득이 일정하지 않더라도 내가 많이 벌어서 상관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위에 저 모든 것들은 그저 내가 세운 선일뿐이다. 선이란 그런 것이다. 부모님의 선과 내가 생각하는 선이 달랐다. 그것뿐이다. 




그러니 부모님의 반대를 마주치는 순간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1. 부모님에게 왜 허락을 받아야 할까?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나의 결정에 대해 누군가의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허락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7살 유치원생이 엄마에게 혼자 놀이터에 가서 놀아도 되냐고 물을 때. 언니가 아끼는 옷을 한 번만 입어도 되냐고 물을 때. 전자는 위험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어리기 때문이고, 후자는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혼' 키워드 전에 유사한 건으로 '독립'이 있었다. 어느 날 독립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부모님은 게거품을 무셨다.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나가 살 수 없으며, 11시 통금을 지켜야 하고, 외박은 절대 금지였다. 소득이 없는 상태였던 대학생의 나는 부모님 집에 살아야 했다.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수긍했다. 부모님 의견이 맞겠거니 하고 따랐다. 나는 어렸고 부모님의 안락한 지붕아래 먹고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다음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나조차도 나의 판단력 및 성숙함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둘째, 그 안락한 지붕을 그대로 가져와야 할 때. 다른 말로 내가 나이만 먹은 어린애 거나, 부모님의 돈이 필요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부모님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2. 확신이 있을까?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방법이 아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나다. 나의 확신이다. 나의 결정에 대한 확신. 나에 대한 믿음. 애초에 이게 없다면 오만곳에서 휘둘리고 말 것이다. 정말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내가 결혼을 주저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누군가 던진 한마디로 흔들리는 결정이라면 그것은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본인 때문일 수 있다. 그냥 내가 뭔가 마음속에 정립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 동네 꼬마가 던진 한마디에도 흔들릴 수 있다. 


결혼은 내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함께할 사람을 골라서 이 꼴 저 꼴 다 보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 상대방과 내가 꿈꾸는 미래를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답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나만 할 수 있는 내 결정이고 내 책임이다. 


한때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하다가 식어버리면 그것만큼 슬픈 것이 없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사랑의 호르몬이 영원히 나오지 않을 테니, 불장난 같은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70살 먹어서까지 연애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외로운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 짝꿍을 만들고 싶었다. 사랑의 호르몬이 휘발되고 나서도 쿵짝이 잘 맞아서 신나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카롭기 짝이 없는 세상에 서로 다독이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다. 


돌아보니 내가 정한 선이 명확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았고, 내 결정을 믿었다. 

어느 순간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결혼으로 시작한 키워드가 독립에 닿았다. 무의식 중에 나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아빠에게 칭찬받는 예쁜 딸이 되고 싶었다. 잘한 것, 좋은 것들을 뽑아 이야기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없는 척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부모님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상의하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그게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니 3분의 1은 아직도 애였던 것 같다. 서른이 넘도록 엄마 주머니를 벗어나지 못한 캥거루였고 부모님도 그런 나를 내어놓지 못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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