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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4. 2019

다양한 개인이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29CM 컬처에세이 연재 05

2000년대 초반 20대였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원은 유치부, 초등부 대상 미술 학원이어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었는데 당시 원생이 점점 늘어나자 원장은 옆 단지에 미술학원 분점을 내기로 결정했다. 일주일에 화, 목을 분점 운영으로 하여 주임강사였던 내가 단독으로 그곳을 맡아 일주일에 이틀은 그곳으로 출근했다. 아이들이 학원에 오는 시간은 보통 하교 후 2, 3시로 1시에 출근한 나는 아이들이 오기 전 그날 수업 준비를 해놓고 남는 시간은 주로 집에서 가져온 소설을 읽었다. 분점은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었는데 학원 맞은편에는 책 대여점이 있었다. 학원과 책 대여점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였다. 교육열보다 책 애정도가 높았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건너편 책 대여점의 주인을 부러운 마음으로 힐끔거렸다. 학원에서 짬짬이 읽는 소설은 갈증만 더했기에 하루 종일 책에 둘러 싸인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는 그녀가 늘 부러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책방을 열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이. 


책방을 여는 건 막연한 꿈이었다. 언젠가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늘 가슴 한쪽에 응어리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관련된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작은 책방에 관한 여러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확실한 것은 매년 책을 읽는 인구는 줄어든다고 하지만 동네 서점은 꾸준히 증가하고 없어지고를 반복한다는 것. 실패담이 늘어나면 없어지기 마련이건만 그래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책방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당장에 실현할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브로드컬리의 서점 시리즈는 서점 오픈에 대한 갈증을 씁쓸하면서도 시원하게 해갈해 주었다. 씁쓸하다고 말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책만 팔아서는 가게를 오래도록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결과 때문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도 책방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편집부의 독립적인 관점에서 자영업 공간을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는 로컬 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에서 내가 서점에 관한 로망 혹은 현실 파악 때문에 읽은 책은 3권으로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과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이다. (현재 총 5권의 책이 출간됐다) 제목부터 어찌나 현실적인지.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대표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편집된 이 책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자극적이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의 꿈이었던 책방을 오픈했지만 결국 인터뷰 기간 동안에도 문을 닫는 가게가 나왔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 책에 실리고 멋져 보인다고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 많은 서점 주인들이 주변에서 누군가가 책방을 준비하고 싶다면 열에 아홉은 말리겠다고 하니, 내 오랜 꿈이던 책방 열기를 재고해보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도 책방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양한 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중에서)


도톰한 책을 덮은 나는 상상해 본다. 슈퍼마켓과 약국, 가정의학과, 태권도 학원, 삼겹살집, 부동산 등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게의 전부인 우리 동네에 책을 파는 가게 하나가 생기면 어떨까?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고 있어 자려고 뒤척이다 잠이 오지 않는 누군가가 책이나 읽어볼까 하여 슬리퍼 신고 슬슬 걸어올 수 있는 책방이 생긴다면, 내 일상에도 조금 다른 페이지가 펼쳐지지 않을까? 



*컬처 에세이는 29CM 컬처 캘린더에 매월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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