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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10. 2019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29CM 컬처 에세이 연재 04

결론부터 말하면 난 이 잡지를 읽지 말아야 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아껴뒀다가 맨 마지막에 먹고,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오히려 시간을 끌어 (책 읽기 최적의 상태로 미뤄둔 다음인) 한참 나중에 설렘을 안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잡지를 덜컥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내 관심을 끌기에 충만했지만 난 괜히 덤덤한 척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미스테리아>는 나를 업무 중단의 사태로 몰고 갔다. 그저 과월호 몇 권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몰입해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읽으면 안 돼. 이 잡지를 자세히 읽지 마!’ 나는 이 말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 (속으로) 외쳐야 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기사를 집중해 읽고 기사에서 소개한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고 그걸 장바구니에 담는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밝힌 적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미스터리물을 굉장히 좋아한다. 호러물보다는 스릴러 쪽이다. 책, 영화, 드라마 모든 것에서! 대놓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잔혹한 공포물보다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도시 전설, 일상 스릴러 같은 소재에 사족을 못 쓴다. 오늘 출근길 스티븐 킹의 <아웃사이더> 2권을 전자책으로 다 읽었다. 스티븐 킹의 최신작이다. 어찌 보면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책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진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책 한 권 읽는 것뿐이지만 공포의 순간에 나 혼자 들어와 있다는 착각과 실제가 아니니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있는 관점이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안 읽고 도대체 뭘 보는 거지? 라는 의문마저 들 때도 있다. 심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지하철에서 읽고 있자니 사람들이 계속 힐끔거렸다


이런 나에게 <미스테리아>는 뭐랄까, 나의 즐거움을 간파한 누군가가 옜다! 하면서 던져 준 선물 폭탄?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초밥이 끊임없이 나오는 상태? 맛있는 디저트를 계속 먹는데 배는 부르지 않은 기분 좋은 포만감이 유지되고 있달까? 아무튼 이제야 이런 잡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이 잡지의 이름은 미스터리와 히스테리아를 결합한 단어로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단순히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만 하는 게 아니라 매달 고정 코너가 꽤나 흥미로운데, 그 중 ‘NONFICTION’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법의학, 사법 체계, 프로파일링 등에 대해 전문가가 쉽게 해설하는 코너로 실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하기에 더 섬뜩하다. 더불어 ‘취미는 독서’라는 코너는 두 달간 미스터리 신간 중 10편 내외를 뽑아 에세이스트 김혼비, 번역가 장성주, 북 칼럼니스트 이다혜 등 독서라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먼저 읽고 소개해주는데 가히 개미지옥이라고 볼 수 있다. 각 호마다 정해진 주제가 있어 그와 관련된 기사를 집중해서 파헤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4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도시 전설’과 미스터리 소설에서 다루는 키워드로서의 여성을 집중 조명한 18호가 인상적이었다. 24호에서는 <고백>, <백설 공주 살인 사건>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의 인터뷰가 실려 흥미롭게 읽음과 동시에 그녀의 소설을 몇 권 더 주문했다. 24호의 표지는 검은 눈구멍에서 검은 눈물이 흐르는 섬뜩한 인형인데 이 잡지를 지하철에서 읽고 있자니 사람들이 계속 힐끔거렸다. 내용이 궁금한 건지 이런 잡지를 보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궁금해서 못 참겠다면 한 번 결제로 일 년 내내 받아 볼 수 있는 정기구독권을 기억하자. 여기에 작가 강연회 초청권 2매도 포함되었단다. 미스터리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작정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에 빠져 보는 거다. 



*컬처 에세이는 29CM 컬처 캘린더에 매월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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