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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19. 2023

민하 씨, 우리 말 놓을래요?

"옆자리에, 동갑에, 회사에서 유일하게 같은 일 하는 동료잖아요"

<6화>


퇴근 후 회사 앞까지 찾아온 우진을 데리고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여름밤 이보다 더 나은 조합은 있을 수 없다며 이틀에 한번 꼴로 마시는 치맥이 그나마 위기의 요즘에 위로가 됐다. 주문한 생맥주 잔을 직원이 테이블에 내려놓기도 전에 손에서 건네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야 우진아.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니?”

 “뭔데? 또 그 주대리 얘기야?”

 회사 안에서는 혜진에게 회사 밖에서는 우진에게 주민하 얘기를 꺼내는 나였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것 또한 내 소중한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에 피폐해지는 건 나지만 이렇게라도 하소연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지구에게 무해한 주민하는 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할까? 주민하에 대한 나의 퀘스천은 오로지 그거였다. 주민하를 떠올리면 왜? 왜? 하는 물음표만 둥둥 떠다녔다. 


 “아니, 글이 잘 안 풀리면 나한테 물어보거나 책을 뒤적이거나 담당 엠디랑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좀 좋아? 정말 그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앉아 온종일 노트북만 째려보고 있으면 일이 돼?”

 “그 사람 스타일 아니야?”

 “그럼 결과물이 좋아야 할 거 아니야. 아직도 감을 못 잡은 것 같아.”

양손에 쥔 포크로 닭다리 살을 먹기 좋게 발라낸 우진이 내 앞 접시에 치킨을 놔주며 말했다. 

 “적응기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이커머스 일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여기 오기 전에 M패션에도 있었어. 일 년이 전부지만. 혹시... 일 못해서 잘린 게 아닐까?” 

 “설마... 잘 이끌어봐. 그게 네가 편해지는 길 아니겠어?”


 나는 벌컥벌컥 들이켜던 맥주잔을 탁 내려놓고 가슴을 팡팡 쳤다. 

 “아니이! 내가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괜찮데! 알아서 하겠데! 내가 팀장도 아니고 같은 대리니까 주민하가 그렇게 나와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럼 팀장한테 자기가 말해 봐. 이러이러해서 말이 좀 안 통한다.”

 우진이 발라준 치킨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일 많다고 해서 사람 뽑아줬는데 투덜 된다고 괜히 나까지 안 좋게 찍힐까 봐 그러지... 팀장이야 나더러 잘 가르쳐 보라고 할 텐데. 주민하는 나한테 업무에 대해 배울 생각이 일도 없어 보여. 자존심이 센 것 같아. 이렇게 되고 보니까 차라리 혼자 일할 때가 마음 편했던 것 같아. 딴 사람 신경 안 쓰고 내가 그냥 하면 됐는데.” 


 우진은 계속해서 치킨을 먹기 좋게 발라 내 앞 접시에 놔줬다. 나는 이모를 향해 손을 번쩍 들며 “여기 생맥 한 잔 더요!”하고 외쳤다. 7월의 여름밤 절정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야외에서 술을 마셨다.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때를 주민하에 대한 원망과 불만으로 채울 순 없었다. 

 “여름이니까 봐준다... 여름이니까.”

 자포자기 심정으로 낮게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우진이 측은한 미소를 지었다. 


 봐주길 뭘 봐주나. 내가 뭐라고, 주민하가 뭐라고. 회사 일 거기서 거기지. 뭐 대단한 거 한다고 내 맘 같지 않은 사람을 두고 속을 드글드글 끓나. 매미의 울음소리는 밤에도 우렁찼다. 그 소리가 투정 그만 부리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생맥주 두 잔에 맥이 탁 풀리면서 다 부질없게 여겨졌다. 누가 누굴 가르쳐.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잊지 않고 사온 아이스커피를 쭉 들이켜며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주민하는 어김없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는 주민하의 평소 모습이었다. 밥을 안 먹는 사람에게 매번 밥을 왜 안 먹는지 걱정하는 것도 당사자에게는 스트레스란 걸 알기에 그냥 두었다. 그런데 1시가 다 되도록 주민하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깊이 잠들었나?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며 오후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엎드린 채 꼼짝 안 하는 주민하가 신경 쓰였다. 

 “주대리, 주대리.”

 1시 15분이 되도록 일어나질 않자 나는 주민하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제야 흠칫 놀라며 주민하가 고갤 들었다. 

 “피곤해요? 깊이 잠들었나 봐요.”

 그런데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주민하의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 머리카락이 이마에 이리저리 엉겨 붙어 있었다. 주민하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깜박이더니 느릿느릿 노트북을 열었다. 

  “아뇨, 괜찮아요.” 

  “근데 웬 땀을...”

 주민하는 손등으로 이마를 쓰윽 닦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챙겨주고 싶어도 매번 한사코 거절하는 통에 나는 더는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병원 좀 갔다 올게요.”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듯 보이던 주민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안 좋아요?”

그새 주민하의 얼굴은 더 벌게져 있었다. 어디가 단단히 안 좋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럼 나랑 같이 가요. 이 동네 병원 찾기 어려워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순간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주민하가 내게 순순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되게 아픈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주민하를 부축하며 손지갑과 휴대폰을 챙긴 뒤 주민하 옆에 앉은 박대리에게 말했다.  

 “팀장님 회의 끝나시면 주대리 아파서 병원 같이 갔다고 말해줘.” 

 “네, 다녀오세요.”



 “여름 감기네요. 열이 39도예요. 많이 아프셨을 텐데 빨리 오시지.”

 의사의 말에 고개를 푹 떨구고 있던 주민하를 대신해 내가 말했다. 

 “주사 맞으면 좀 괜찮을까요?”

 “네, 주사가 효과는 가장 빨라요. 열만 떨어져도 한결 괜찮을 거예요.”

 환자도 아닌 내가 의사의 말에 네네,라고 대답하며 주민하를 부축해 주사실로 향했다. 여름감기가 진짜 아프다던데.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집에서 쉬던가 조퇴를 하지. 미련하게 꾹꾹 참기는. 

 병명만 알아도 반은 낫는 것 같다고 했던가. 아님 정말 주사의 효과가 빠른 건가. 주사실에서 나온 주민하의 얼굴이 한결 좋아 보였다. 주민하는 그 와중에도 지갑 역할을 하는 휴대폰을 잊지 않고 챙겨 왔다. 


 “약국은 어디예요?”

 주민하와 나는 아까와 달리 어색한 거리를 유지하며 약국을 향해 걸었다. 

 약국에 도착하자 주민하가 처방전을 약사에게 내밀었다. 딱 봐도 오래돼 보이는 약국. 연세 지긋한 약사님이 처방전을 건네받아 조제실로 들어갔다. 


 “여름 감기 지독한데, 무조건 푹 쉬세요. 하루 이틀 지나면 홀가분해질 거예요. 미지근한 물 충분히 섭취하시고요.”

 약봉지를 받고 주민하가 결제를 위해 스마트폰을 카드 리더기에 갖다 대려고 했다. 

 “우린 아직 현금하고 신용카드 밖에 안 되는데?” 

 “이걸로 해주세요.”

 난처해하는 주민하를 대신해 뒤에서 기다리던 내가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약사님께 건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아파서 병원 가는 것도 아닌데 지갑은 왜 챙겨 왔담? 가까운 거리를 가도 지갑을 꼭 챙기는 준비성이 그나마 난처한 상황을 해결했다. 


 “3,500원이죠? 계좌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이체해 드릴게요.”

 “이체는 됐고, 나중에 커피 한 잔 사요.”


 한낮의 열기가 쌓인 거리는 이글거렸다. 더위에 지지 않겠다는 듯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가 약국을 나와 회사까지 걷는 주민하와 나 사이를 파고들었다.


 “민하 씨. 우리 동갑인데 말 놓으면 어때요? 뭐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만, 민하 씨 입사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우리 밥은커녕 커피 한 잔 같이 한 적 없잖아요. 회사가 뭐 되게 큰 것도 아니고 작은 스타트업인데 너무 딱딱하게 다닐 필요 있어요? 옆자리에, 동갑에, 회사에서 유일하게 같은 일 하는 동료인데, 명분이 좋잖아요, 반말하기. 나도 뭐 학교 같은 가족 같은 회사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오래 일하기에는 그런 게 필요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저 백대리님께 할 말이 있었어요.”

 주민하는 끝까지 말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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