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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11. 2023

기획전 원고 어디까지 됐어요?

"금액 할인을 강조해야 하는데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5화>


“주 대리님, 원고 다 됐을까요?”

 테크 엠디 박소영이 주민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손보다 발이 빠른 박소영은 슬랙으로 물어보는 것보다 직접 얼굴 보고 말하길 좋아했다. 성격상 모니터만 보고 있는 건 못하겠다며 여기저기 다녀서 날다람쥐란 별명도 갖고 있다. 갑작스러운 박소영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주민하는 “네... 그게 저...”라고 말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주민하 쪽으로 당겨 모니터를 함께 바라봤다.


 “어떤 기획전이에요?”

 주민하가 업무 파악하는 동안은 내가 그의 업무 스케줄까지 관리하는 터라 놓친 게 있나 체크해야 했다. 모니터를 보던 박소영이 허리를 굽힌 채 고개만 돌려 날 향해 말했다.

 “이번에 턱선 관리하는 리프팅 기기 기획전인데요. 오늘까지 원고 주셔야 디자인 들어가는데...”

 “주 대리님 기획전 원고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내 물음에 주민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테크 제품 기획전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는 뒀다 뭐 하려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면 미리 엠디와 상의해야죠. 이렇게 무작정 잡고만 있으면 다른 스케줄에도 영향을 미치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일정에 차질을 주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고 평소 굳게 믿고 있는 나였다. 박소영이 발을 동동 고를 걸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쏘아대듯 주민하에게 말이 나갔다. 주민하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박 대리님, 이거 3시까지 써서 넘길게요. 정말 미안해요.”

전체 기획안을 빠르게 둘러본 나는 기획전 사이즈를 체크한 뒤 가능한 시간을 말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디자이너들 다른 업무 스케줄이 많아서, 저도 곤란해요.”

 “네. 그럴게요.”

 결과물이 나온 뒤 시간을 갖고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을 줘야 엠디 입장에서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은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 원고가 없어 디자인이 덜 된 상황이라면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업로드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다 마찬가지지만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획전은 엠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해당 브랜드, 회사의 생업이 달린 문제일 때도 있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근데 대략적인 기획은 나온 거죠? 카피만 나오면 되는 건가요?” 나는 박소영에게 물었다.

 “네, 이번 기획이 저희 사이트에서 구매하면 정가보다 23만 원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게 업체와 협의 됐거든요. 워낙에 할인이 크게 들어가니까 다른 것보다 금액을 강조할 수 있는 카피면 돼요.”


 기획전 오픈 시기를 업체와 협의하고 디자이너와 스케줄 공유를 통해 일정을 다 맞췄을 것이다. 업무 공유한 날짜를 보니 일주일 전이었다. 아직 업무 적응 기간이라 사이즈가 큰 기획전은 가급적 내가 맡고 하루 이틀 고민하면 해결될 크기의 이벤트만 전달했는데 이걸 일주일 동안 잡고 있었다니. 미리 챙기지 못한 나로서도 큰 실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붙잡고 낑낑대면서 나에게 한마디 의논조차 하지 않은 주민하가 답답하기만 했다.


 박소영 엠디가 자리로 돌아간 뒤 노트북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대리님 저 좀 잠깐 볼까요? 회의실 가서 얘기해요.”

 “노트북 가져갈까요?”

 “네, 당연하죠! 이거 해결해야 하니까.”


 빈 회의실에 들어가 주민하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주민하는 긴장은 했지만 티 내고 싶지 않다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단순히 제품의 특이한 기능을 설명하는 거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할인 금액을 강조하되 뻔하게 쓰면 안 된다는 주문은 생각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그 난감함을 충분히 이해할 순 있었다.


 “금액 할인을 강조해야 하는데 다르게 말하려니 도저히 방향이 안 잡혀서...”

 그제야 이 사태에 관해 입을 연 주민하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주민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동의했다. 그래서 몇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 원래 쓰던 방식을 완전히 버린다고 생각하고 발상 자체를 다르게 해야 했다.

 “이 제품이 워낙 고가라서 할인을 23만 원이나 해도 100만 원이 넘어요. 하지만 이번 이벤트에 타깃층인 40대 주부들은 고민해 볼 만한 금액대죠. 그리고 대상이 한번 이상 구매한 이력이 있는 고객들이니까요. 저라면... 타깃을 자녀를 둔 학부모로 잡았으니 그들한테서 아마도 공통적으로 나가는 돈을 떠올려 볼 것 같아요. 가령 자녀의 학원비 같은 거?”

 “아....”

 “막막할 땐 소비자가 얻게 될 메리트를 떠올려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더라고요. 일단 지금은 시간이 많이 부족하니까, 방향은 이걸로 잡고 써보자고요. 컨셉이 잡혔으니까 주대리가 한번 써보세요. 이건 헤드 카피 하나면 되니까 조금 과장돼도 괜찮아요. 엄마들 마음에 확 꽂히면 더 좋고요.”

 나는 주민하를 회의실에 남겨두고 자리로 돌아왔다. 3시까지는 40분 정도 남았다.


 -백 대리님, 카피 완성했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아직 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주민하가 회의실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아이 한 달 학원비 23만 원 벌어주는 OOO>


 -음 나쁘지 않네요. 하나만 쓴 건 아니죠? 이 컨셉으로 시안 3개 정도 해서 보내주세요.



 

 온라인 쇼핑몰 에디팅 카피라이터 6년 차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소스를 얻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웠고 책을 한 권이라도 낸 작가들이 그저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럼에도 카피를 쓰는 건 나름 재미도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광고를 전공한 게 아니다 보니 서점에서 카피라이팅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독학을 하고 일본 광고 카피에 매력을 느껴 조금씩 따라서 써본 게 전부지만 하면 할수록 동료들에게 신선하다는 피드백도 받고, 시간이 흘러서는 이커머스에서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라는 사례를 남겼다. 내 작업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기 보단 꾸준함의 미덕을 여실히 보여준 결과였다.


 평상시 나는 책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대충대충 쓰고 싶어질 때마다 스스로 세운 기준을 다시 찾아가며 고쳐 쓰길 반복했다. 공감 가는 내용에 밑줄을 긋고 그것을 반드시 파일로 만들어 나중에 필요할 때를 대비한 밑작업을 하는 게 평소의 루틴이었다. 그래서 내 책상에는 늘 수십 권의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로 개인 택배가 배송되지만 그중에서도 책 택배가 제일 많았다. 회사에서 매년 지원되는 자기 계발비 90만 원은 모조리 책을 사는 데 썼다. 일이 안 풀리면 눈앞에 있는 아무 책이나 펼쳐서 읽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읽는다기보다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려고 했고 때로는 책등의 제목만 보고도 카피의 힌트를 얻곤 했기에 아무것도 없이 업무를 해나가는 주민하가 의아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했다.


 이어폰을 꽂지도 않고 온종일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는 주민하의 작업 스타일이 놀라우면서도 최종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대할 때마다 난감해졌다.


 “저... 주대리, 참고할 책이 필요하면 내 자리에 있는 거 갖다 봐도 되고, 아니면 회사 3층에 공유 도서들 있으니 참고해도 돼요. 우리 일이 모니터만 뚫어지게 본다고 풀리는 게 아니잖아요? 필요할 땐 담당 엠디한테 상품을 직접 볼 수 있는지 요청하셔도 돼요. 그게 맞고요. 뭘 알아야 쓰니까요."


 몇 주간 봐온 주민하의 작업물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최대한 돌려 말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잘 못하니 문제 아닌가. 왜 저렇게 받길 싫어하지? 찬바람 쌩쌩부는 주민하를 향해  “그래요, 그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 없이 오랫동안 혼자 일을 해서인지 상대방에게 작업의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어려웠다. 패션 전문 이커머스에서 일 년 정도 일한 게 이벤트, 기획전 등의 원고를 써본 경험이 전부라고 할 수 있기에 급기야 팀장이 주민하의 어떤 면을 보고 채용한 건지 궁금했다. 나한테 사전에 포트폴리오라도 보여줬다면 좋았을 텐데.  

 주민하의 밋밋한 글을 군더더기 없음으로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이건 일이다. 매출과도 연관 있고 여태껏 차곡차곡 쌓아온 우리 사이트의 텍스트 퀄리티에 대한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괜찮다. 알아서 하겠다, 는 주민하의 단답형 대답이 점점 고집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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