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다시 만난 카피 06
한동안 열심히 다니던 네일숍에 요즘은 잘 가지 않는다. 계절, 유행, 스타일에 따라 손톱 색을 바꾸고 단정하게 관리까지 하면 기분이야 너무 좋지만 단점도 있다. 하나는 소요 시간이다. 보통 네일숍에 가면 나는 기본(‘아트’는 하지 않는다)만 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사장님이 열심히 내 손을 관리해 주는 1시간 30분 동안 그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샵에 틀어 놓은 TV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기도 한다. 보려고 했는데 못 본 방송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봤던 걸 또 봐야 할 땐(내 마음대로 채널을 바꿀 순 없다) 시간이 몇 배로 안 가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도 한다. 뭔가를 하고 있지만 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는 관리를 받는 동안 한 자세로 1시간 30분을 앉아 있는 게 나로선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목디스크도 있고 허리도 튼튼한 편이 아니어서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한 상태로 긴 시간을 유지하는 게 때론 벌을 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적으로 내 저질 체형, 체력 탓이다.
살짝 다른 얘기지만, 미용실에서 염색이나 펌을 하고 나면 직원이 나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데, 어릴 땐 그게 되려 이상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직원이 계속 서서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왜 나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하는 걸까? 그런데 나이를 좀 먹으니(?) 그 말이 너무 이해가 됐다. 이젠 2시간가량 의자에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면 직원이 나에게 하는 “고생하셨습니다”하는 말이 전적으로 납득이 된다.
오랜만에 서가에서 아사이료의 <누구>를 꺼내 다시 읽었다. <누구>를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별 기대 없이 읽었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으로 한동안 벙쪄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어쩜 이렇게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쓸 수 있지? 였다. 구직 정보를 교환하며 만나게 된 다섯 명의 취업준비생들이 진짜 속마음을 내놓지 않고 허세와 위선으로 포장한 SNS를 통해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지, 너무 대단하지 않게 리얼해서 섬뜩한 소설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2013년이고 이때는 인스타그램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많이 쓰던 때여서 주로 그 두 소셜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런데 SNS에서 사람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다 비슷하기에 인스타그램이 대세인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