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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서 주는 상처

(관찰 예능에서) 다시 만난 카피 14

by 이유미

요즘도 텔레비전으로 다수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챙겨보는 내가 월요일에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은 ‘오은영의 결혼지옥’이다. 다양한 문제로 불화가 있는 부부가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을 받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결혼율과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지옥’에선 문제 있는 부부만 나오고 ‘금쪽같은 내 새끼’에선 문제 있는 부모와 아이가 나오기 때문에 그걸 보고 누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싶겠냐는 것이다. 생각은 자유니까 그렇게도 볼 수는 있겠지만 나는 100% 동의할 순 없다. ‘결혼지옥’에선 당연히 문제 많은 부부들이 나오지만 결국에는 해결방안을 찾아 나간다. 가끔 그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걸 보며 내가 다 벅차서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진짜 헤어지고 싶은 부부는 방송 신청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배우자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어떻게든 고쳐 살고 싶단 생각으로, 때론 치부까지 드러내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아닐까.


본방사수까지 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라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몇 년을 지켜보니 그들의 문제가 일정한 패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아무튼 내 눈에 보이는 패턴 중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게 배우자의 무반응이다. 부부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사람은 너무 의욕 충만인데 한 사람은 너무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고로 부부는 비슷해야 문제가 덜 생긴다. 어떤 남편은 우울증 때문에 어떤 아내는 성인 ADHD 때문에 무기력을 호소한다. 당연히 이와 반대 지점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 사고를 치고 다니는 배우자가 그렇다. 그러니까 제발 가만히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방팔방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 정작 자신은 그게 문제인 줄도 모른다. 그저 열심히 살려다 보니 그렇단다. 그런 배우자를 둔 아내 혹은 남편은 제발 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의욕 넘치는 사람과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 중 배우자를 고르라면 누굴 고를까? 물론 현실적으론 중간이 딱 좋겠지만. 어쨌든 의욕이 넘쳐서, 가만히 있어서 결과만 좋다면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다. 나는 상대방에 맞춰줄 자신이 있으니까. 굳이 둘 중 너는 어느 쪽이냐 물으면, 흠... 중간이긴 하지만 반드시 나눠야 한다면 가만히 있는 쪽인 것 같다. (나는 때론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추진력 있게 일을 하기도 한다.) 앞서 부부는 비슷해야 가장 좋다고 했는데 우리 부부가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둘 다 일 저지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인 이유는 조심성이 많아서, 모험심이 부족해서이고 남편은 차분하고 진지하고 뭐든 준비가 되면 시작하는 스타일이라 그렇다.


김설 작가의 <다행한 불행>을 읽는데 기가 막힌 문장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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