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에서) 다시 만난 카피 13
상가 1층에서 책방을 운영할 당시 처음 인테리어 공사할 때 반드시 이 의견은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작업 공간(이래 봤자 책상과 책방 하나 들어간 자리)의 파티션 높이였다. 책상 위치가 책방 정면을 향하게 되는데 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보이지 않게끔 파티션을 높여달라는 거였다. 그래야 손님도 손님의 자리에서 내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책을 읽거나 고를 수 있을 테니까.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내 눈빛이 오래 머무는 손님을 눈치 주게 하면 안 될 테니. 한편으로는 손님 없는 텅 빈 책방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슬쩍슬쩍 보는 게 힘들었다. 안이 훤히 보이는 건 손님 입장에선 필요하겠지만 가게를 종일 지키는 나의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러웠다. 애초에 블라인드를 설치해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고 싶을 땐 창을 가리곤 했다.
창이 있기 때문에 나는 바깥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나의 이런 방식을 답답해하거나 장사하는 사람의 자세가 안 돼있다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만, 하루에 한 명 올까 말까 한 가게를 지키는 일은 보통 정신력으론 버티기 힘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어쨌거나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버텨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개업 후 몇 년이 지나니 공인중개사의 일은 매물을 보여주고 계약을 성사시켜 수수료를 받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보여주고 설명하고 흥정하고 그런 뒤에는 결국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서유미_밤이 영원할 것처럼 97쪽)
서유미 작가의 단편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 중 ‘지나가는 사람’에는 화자인 석주가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게 매물을 보여주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 말한다. 1인용 소파가 자신의 동료가 될 줄 몰랐다면서 자신의 엉덩이 모양에 맞춰 가죽이 변형된 소파 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손님이 오지 않는 건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게에 들어오진 않고 지나가는 길에 슬쩍 안을 살피는 사람이 망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더 싫었다. 시선을 피하고 싶어 파티션을 높였지만 그럼에도 텅 빈 공간을 들키는 것만 같아 괜히 위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