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에서) 다시 만난 카피 12
이런 말이 있다. ‘망설이는 이유가 가격이면 사고, 사는 이유가 가격이면 그만둬라.’ 요즘 지갑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 쇼핑을 최대한 절제하는 중에 내 마음을 토닥이는 듯하다. 나는 전날 인터넷으로 주문한 맨투맨 티셔츠를 떠올렸다. 원래는 85,000원인데 세일해서 65,000원. 나는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하루 이틀 고민하다 주문해 버렸다. 오랜만에 꼭 사고 싶은 옷을 보았는데 가격 때문에 망설여졌다. 세일된 가격조차 내 기준에 그리 적당한 값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른 참이었다. ‘그래, 다른 건 다 맘에 드는데 가격이 문제였는데 샀으니까 됐다.’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옷이 도착했다. 택배 박스를 뜯어 옷을 마주했다. 역시 맘에 든다. 잘 샀다. 나는 다시 곱게 접어 이걸 어디에 두나,하고 옷 방(드레스룸 아님. 뉘앙스의 차이만큼 보기에도 확연히 다르다)을 휘 둘러봤다. 둘 데가 마땅치 않다. 내일 바로 입을 옷이지만 나는 얘를 어딘가 잘 두고 싶다. 옷을 든 채로 1, 2분 고민하던 나는 결심을 한다. 옷 방을 정리할 결심.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새로 뭔가를 사면 그것을 둬야 할 곳을 찾다 집을 치우게 됐다. 옷을 사면 서랍을 정리하고 화장품을 사면 거울장(내겐 화장대가 따로 없고 전신 거울과 수납이 일체 된 가구를 쓴다)을 치운다. 운동화를 사면 신발장과 현관을 청소한다. 즉 나에게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은 그 물건의 카테고리를 정리할 계기가 된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새로운 각오나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실제로는 사소한 것들을 살피다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닐까. 나처럼 맨투맨 티셔츠를 하나 사고 옷장을 정리하는 게 큰마음을 먹고 움직이는 것보다 실행력도 좋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큰 각오를 한 뒤엔 그 각오 자체에 에너지를 많이 쏟아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음이 생겼을 때 곧장 움직이는 편이 훨씬 실용적이다. 그럼에도 광고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에는 큰 계기가 있어야만 사람들이 변화를 다짐하리라 단정 짓는 것 같다. 물론 모든 브랜드, 제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의 브랜드가 대단하다고 강조하고 싶을수록 큰 말을 쓰는 듯하다. 대단함을 강조하기 전에 사람들이 공감하게 만들어서 그 브랜드를 다시 보게끔 만드는 게 우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