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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an 19. 2020

나이에 "안" 걸맞게 사는 나

brunch x 노들서가



작가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건 어떠세요?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15분, 짧은 강연 시간을 받았다. 주제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감사한 주최 측 트레바리와 노들 서가




나이에 "안" 걸맞게 사는 나.



사람은 살다 보면 그 나이에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 존재한다. 초등학생은 어른 공경, 중고등학생은 학업, 대학생이 되면 취직을 강요당한다. 이것들은 응당  나이에 처리해야 하는 과업처럼 여겨지며, 이를 어길 시 천륜을 저버린 것처럼 주위에서 죄책감을 심어준다. 그렇게 나도, 나름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했었다 과거에는.


대학생 때는 공모전에 참 많이도 도전했다. 하지만 결국 졸업 직전까지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나도 결국 취업을 해야 하나 보다 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고된 취준 기간을 버티고 어렵게 취직한 직장을 그러나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관두면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승연'이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무너졌고 주변인들의 말에 무자비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나는, 평범해지는 것에 실패했다.



구글 이미지



어렸을 때부터 난 고집이 셌다.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사회적 통념에 맞게 살도록 강요당했다.


너 불편해 보여.
왼손잡이들은 글씨 이상해.



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은 내게 오른손을 쓰라고 말했다. "내가 ?" 어린 마음에도 그런 반항심이 작게 자리했다. 초등학생 생활 내내 반복된 잔소리 덕분인지, 나는 완벽한 고집쟁이로 자라나 버렸다. 누군가 이거 해,하고 말해도 그 이유가 마땅치 않거나 이해할 수 없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옹고집을 꺾고 (작가도 못 되고) 취직에 실패했으니 풀이 죽을 수밖에.



한 달에 회사를 두 번 관뒀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절제력이 없었다고 말한다.



왜 참지를 못했니.
젊어서 아직 고생을 몰라.



하지만 나는 이제 독립출판 작가로 3년 차가 되었고, 어렸을 적부터 담임 선생님들은 위 학생의 칭찬할 만한 점으로 "인내력"을 곧잘 꼽았다.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나에게도 사회적 역할은 작용한다. 여전히 내 주변의 절대다수는 적성과 무관한 일을 구해 돈을 벌고 있으며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탁월히 일조하는 그들의 역할에 존경을 표한다. 나는  번이나 실패한 일이니까.)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매번 상기한다.



그래. 20대 한국 애들은 저렇게 살지.



직급은 주임, 관심사는 운동. 주말에는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친구들과 즐거운 오후를 보낸다. 초년생부터 살뜰하게 저축한 친구는 남자 친구와 평생 기약을 바라봤고, 누군가는 전세 대출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나는 가만히 듣고 있는다. 작가님들과는 나눠본 적 없는 대화에 귀가 쫑긋 서면서도 가슴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저 계속 견디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힘드니 동정해달라는 말은 아니다. 내 삶이 (경제적으로) 불행하다고 절망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으니. 다만 요즘은 친구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언젠가 나도 버텨내면 저들과 같은 선상에 오르는 날이 오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인생의 속도는 다 다르다. 평범해 보이는 내 친구들도 같은 상황에 놓인 주변 사람들과 경쟁하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종목의 차이가 아닐까. 그들이 두 발 자전거 경주라면, 나는 외발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누구나 열심히 달리고 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사용해서 어디까지 달려가느냐가 다를 뿐.



사회적 역할이 무겁다면 가끔은 벗어나는 선택을 해도 좋다. 나라고 해서 앗싸 좋다고 정상 경로를 이탈하는 게 아니다. 매번 머리 터지는 고민 끝에 결국 소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알레르기 반응처럼 약을 먹으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결국 이게 내 체질이려니 하고 포기한 것 중 하나쯤으로 (회사 생활을) 여기고 있다.




신한 카드 주세요.



최근 내가 참 나이에 안 걸맞게 살고 있다고 깨달은 웃긴 일화가 하나 있다. 현대 카드 발급을 신청해둔 때였다. 출근 시간이 조금 벗어난 10시. 나는 지하철을 타고 노들섬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했고, 전화해준 상담원의 목소리는 너무도 낭랑했다.


신규 카드 발급을 위한 본인 확인이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4대보험되는 직장 다니고 계신가요.
예금이나 적금 있으신가요.
실비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으신가요?
자차 있으신가요?
본인 명의로 된 부동산이 있으실까요.
(외람되지만) 결혼하셨나요?"


여섯 가지 모든 질문에 나는 답했다.


"아니오."


상담원은 안타깝게도 카드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봐도 나는 카드 발급이 불가능해 보였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웃었다. 정말이지 나는 나이에 "안" 걸맞게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많이도 웃었다.


그러니 이런 필자도 있으니, 여러분들도 힘 내시라고 말하고 싶다.






* 구글 이미지를 제외한 모든 사진과 그림,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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