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힘을 뺀다는 건 참 어렵다
1학기 때였다.
'Drawing'이라는 수업명에 맞게 우리는 주구장창 차콜이나 연필로만 그림을 그렸다. 2학기 때 'Coloring'수업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난 색칠하는 법은 왜 안 배우는지 홀로 불평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연필 데생도 못 한다면, 색칠이 웬 말인가.
배워본 적도 없는 한국 미술과 이 수업들을 이러쿵저러쿵 비교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영문학 수업보단 드로잉 수업이 재밌다는 사실. 몸을 움직이는 실기 수업은 앉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독서보단 겉으로 보기엔 역동적인 행위다. 무엇 하나가 더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물론 독서는 마음의 별똥별을 떨어뜨리는 멋진 일이지만, 내가 그린 수천 개의 선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과정은 언제나 가슴 떨린다.
테이블 위엔 선배들의 손때가 묻은 석고 물체들이 놓였다. 교수님은 이 앵글에서는 저 사물들이 어떻게 놓여야 더 멋진 그림이 탄생할까 고민하시며 사물을 배열하셨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그녀의 손길이 몇 번 오갈 때마다 그림 그리기가 더 어려워졌을 뿐이다.
각자가 원하는 포인트에 이젤을 세운 후 우리는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교수님이
원하는 자리로 이젤 옮겨서 그림 그리세요
라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수건 돌리기를 하듯 눈치 빠르게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사람들의 취향이란 다 비슷한 것인지, 친구들은 그리고 싶은 veiw가 다 비슷했기 때문에 빨리 그곳에 이젤을 박지 않으면 "쓰읍, 뭔가 앵글이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어쨌든 나만의 구도를 차지했다면 그 다음은 사진 촬영이다. 미술 수업이 아무리 주 2회 3시간씩이라고 하더라도, 주말에 결국 또 그림을 그리러 나와야했기 때문이다. 조명이 조금만 틀어져도 사물의 그림자 각도나 명암의 수준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버전으로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나는 매번 느끼지만 추상화엔 소질이 없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큰 감동을 받진 못한다. 사물을 관찰하고 분해해서 단순화시키는 능력은 아마 제로인 모양이다.
나는 실재하는 사물을 그대로 나타내는 구상화(검색찬스)를 좋아한다.
사실과 똑같이 그리기
구상화가 현실의 모방이라 생각하면 창조보다 쉬운 일이겠지만, 머릿속 상상과 달리 바로 눈앞에 비교대상이 있기 때문에 평가 받을 때는 구상화가 더욱 혹독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데생은 섬세한 손놀림으로 그림이 졸작과 대작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숨 한 번 잘못 들이키면 연필이 엇나가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지우개도 함부로 대지 못한 채 손이 허공을 방황하기도 한다. 나는 그림을 혼자 그려와서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게 가장 힘들었는게, 그 중 하나가 손목에 힘이 너무 많았다는 거다. 몸에서 힘을 뺀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지.
하지만 여러 번 실패를 한다면 저절로 알게 된다. 힘 들어간 굵은 선들이 아니라, 섬세한 수 백개의 선이 모였을 때 그림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손목이 느슨해졌고 그림은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현재 <미국, 로망 깨기_교환학생 편>은 텀블벅을 통해 1인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URL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https://www.tumblbug.com/geulj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