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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Nov 23. 2019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일반적'인 존재에 대하여


#여행의이유 / #김영하

책의 성격이 기행문과 거리가 먼 것은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이 잘 표현해준다. 더 나아가 그 이유들이 연유하는 존재의 본질적 인식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새롭게 읽힌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작가가 경험한 시간의 응집은 꽤나 짙었다. 곱씹어 볼 대목이 많았지만 바로 며칠전 소모임에서 다뤘던 주제 '일반적이다'와 생각이 맞물리면서 보다 쉬이 읽어나갔다.

일상적 자아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범주화된다. 이와 달리 배타적이고 특수한 자아를 구별하(고 싶어하)는 본원적인 욕구가 여행의 이유를 마련한다. 여행의 출발점은 이 지점에 있다. 여행을 떠날 때 오직 여권만이 나를 증명하는 가치가 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여행에서 찾으려 떠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의 말마따나 많은 여행자들이 여행을 하는 동안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해 익숙한 곳을 떠나왔지만 여행자의 위치에서도 상황에 따라 나를 서로 다른 범주에 다시 묶으려 하게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존재가 또 다른 지점에 귀착하는 모습은 새로운 분열을 낳는다. 첫 여행이 나를 찾기위해 호기롭게 떠나는 일에서 시작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사회가 만든 나를 잊으려 여행을 떠나게되는 것도 비슷한 까닭으로 읽힌다.

소파에 앉아 인터넷으로도 쉽게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지난 수십 년에 비해서 여행자가 오히려 훨씬 증가한 것은 인간이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의 본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여행은 항상 계획과의 거리감을 발생한다. 때론 상처도 받으며 실패는 여행 도처에 널려있다. 완벽한 여행이란 없음에도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과 흔들리는 정체성이 비롯하는 멀미 때문이지 않을까.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p.169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알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여행자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여행지에서는 그저 이런저런 범주에 따라 분류될 뿐이다. (중략) 국내에서는 내가 누군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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