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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Nov 28. 2019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프탑 상영 N차 관람


열병 같았던 소나기가 지나간 그해 여름,

뜨거웠던 여름의 온기를 찾는 나의 겨울


Call Me By Your Name



지금까지 다양성 영화, 그 중에서도 동성애 영화를 적게 본 편은 아닌 거 같다. 브로크백마운틴, 로렌스애니웨이, 문라이트, 캐롤 등 굵직한 영화들은 한 번쯤은 봤었다. 영화를 보며 내 나름의 의미를 찾기도 했었지만 뭐랄까, 영화의 짙은 색깔을 떠나서 확실히 공감되는 대목이 없다고 느껴졌다.


내가 동성애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대체로 색감 표현에서 다른 영화들보다 더 아름답게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영화 감상과는 별개로 미장셴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이미지를 쉽게 미화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첫인상은 같았다.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로 시작하는 첫장면은 누구나 쉽게 마음을 뺏긴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달랐다. 다르게 느껴졌다. 가장 비슷한 느낌이었던 영화로 <문라이트>가 떠올랐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시각적인 탐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영화는 엘리오의 불편한 감정을 카메라에 의도적으로 담아낸다. 극명하게 담아낸 표정이 내 감정과 시선에 일치되기 시작한다. 나아가 영화는 롱테이크씬을 많이 이용한다. 여기서 엘리오 감정과 나의 감정이 함께 쌓여간다.







음악의 사용도 다채롭다. 올리버가 엘리오에게서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을 때 음악이 깔린다. 가까워질 때 음악이 뚝 끊긴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맥락 안에서 영화는 한편의 그리움, 추억의 회상의 한편을 담아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색감도 같이 이해해볼 수 있는데, 마냥 아름답다기보다 노이즈가 껴있는 느낌이 드는 영상이 어렴풋하고 희미한 기억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나아가 꿈과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기억을 넘어서 꿈을 꾼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보다도 다 현실 같은 꿈. 그런 기분에서 마치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하고 있는 듯하다.





계기라는 것이 작용한다.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그의 조수로 들어온 올리버 사이에서는 언어에 대한 얘기가 일상적으로 오고 간다. 엘리오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런 일에 익숙하다. 엘리오와 올리버 사이에는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 직접적인 고백이나 거절은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언어를 넘어선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이 오고 간다. 둘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형용할 수 없는 불확실한 순간의 연속이 만들어낸 계기와 같은 것이다.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그 어떤 표현보다 서로가 서로의 조각이 되는 순간에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존재를 규명하고 관계를 구분짓는 의미의 이름(언어)이 아니다. 범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들만의 규칙으로 새로 의미가 부여된 존재의 본질을 대화하는 영역으로서의 언어다.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내 경험속에는 그들이 공유하는 정서와는 다른 정서가 작동하고 있지만 분명 점접이 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이라는 흔한 소재를 특별하게 다루면서도 좀더 보편적인 정서로 담아내고 있다. 내가 엘리오와 다른 기억을 가지면서도 같이 슬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를 떠오르는 이미지로 비유하자면 마치 샤갈의 그림 같다. 어렴풋한 기억이라는 느낌이 좀더 강렬하게 다가온 나에겐 그 수준을 넘어서 꿈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더 슬펐다. 분명 현실이었고, 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지만 마치 어루만질 수 없는 거품의 냄새를 맡으려 노력하는 모습같았다. 샤갈의 그림을 볼 때처럼 내 마음이 아렸다.





영화의 결말에서 당장 떠오르는 노래는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게 볼품없느냐 생각해볼 때, 볼품없지는 않았던 거 같다.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떠올려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곱씹으며 나의 여름날 기억도 짧게 스쳐간다.


간만에 여운이 진한 영화를 보고 미처 쏟아내지 못한 감정들을 늘어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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