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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Dec 01. 2019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리뷰

건축과 공공 디자인 같은 분야에 알음알음 관심을 가져왔다. 그 이전부터 훈데르트바서 라는 자연주의적 건축가를 좋아했었던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알쓸신잡2에서 유현준 교수가 생각을 말하는 부분들이 흥미로웠었다. 이 책에서도 방송에서 언급했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어서 말을 글로 한번 더 읽어볼 수 있었다.


‘다양한 생각이 멸종되는 사회’라는 큰 제목으로 글을 시작한다. 건축적인 관점에서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식보다는 오히려 관심의 문제였다. 저자는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p.297)는 말을 인용하며 관심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가쓰케 마사노부의 <물욕 없는 세계>에서는 ‘물건은 벽과 사람 사이에 있다(후쿠사와 나오토)’라는 표현이 언급된다. TV가 벽에서 손 안으로, 오디오가 스피커에서 손 안으로 옮겨간 것이 그 예가 된다. 공간과 기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삶의 형태를 바꾸어왔듯이 사회문화적인 요소의 변화를 바탕으로 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 또한 그러하다. 그 정서가 현대에는 탈중심화된 미디어, (공간/사물의) 기능적 경계의 모호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와 기술은 날로 새로워지지만 우리나라의 주거 공간으로서의 건축(12년 동안 교육을 받는 학교를 포함)을 한국의 고착화된 집단주의적 성향과 연관지어 이해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카테고리 나누기

느낀 점 중심으로 내용 재구성


01. 도시와 인간

 (여는 글) p.6

같은 집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다른 집이 된다. 건축물의 의미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그 건축물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다.


 p.10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이 도시에 모여들면서 생각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혁신적인 발명과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창조는 다른 생각들이 만났을 때 스파크처럼 일어난다. 도시는 그런 우연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02. SNS 시대의 건축

 p.13

국제 분야 전문 언론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에서 SNS가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사회적 건설에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SNS는 '아랍의 봄' 때 그랬듯이 사람을 선동하고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책의 결론에서 결국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전통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03. 다양한 생각이 멸종되는 사회

 p.26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띠는 데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서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학교 교실과 건물은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는 수십 개의 똑같은 상자형 교실을 모아 놓은 하나의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략) 공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12년 동안 아이들을 수감 상태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고등학교 좋업생에게 꽃다발을 주기보다는 두부를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p.35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최든 들어 기회가 생겼다. 학생 수가 줄면서 빈 교실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 빈 교실을 다른 용도로 쓸 것이 아니라 교실을 부수어 테라스라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10분 쉬는 시간에 잠깐씩 자연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p.41

-학교 건물의 저층화, 공간 구조의 다양화


 p.60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로 만든다. 아이들은 천재 건축가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시간이 없으니 공간을 찾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는 점점 의미 있는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자. 그래야 아이들에게 이 도시가 더 좋은 공간이 될 것이다.



04. 트렌드와 공간

 p.74

이렇게 여러 명의 MC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히어로 영화는 현대사회의 탈중심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예다. 과거에는 어느 것 하나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식의 수직적 위계가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여러 개의 중심이 있는 수평적 구조가 특징이다.

-ex. <어벤져스>, <라디오 스타>, <나 혼자 산다>


 p.77

우리는 지금 하나의 공간이 여러 가지 중복된 기능으로 사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사무실은 사무실, 카페는 카페, 도서관은 도서관으로 확연하게 기능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바일 기기의 발전으로 특정 공간이 어느 하나만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대는 지났다. 따라서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공간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휴대폰도 과거에는 버튼과 스크린으로 구분되어 잇었다면 지금의 스마트폰은 화면이 스크린이 되기도 하고 키보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는 하나가 다중적인 기능을 갖는다. 경계의 모호성은 공간과 기기를 넘어 인간에게까지 확대된다. 점점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고, 노인과 청년의 구분도 사라진다. 적어도 패션상으로는 구분이 잘 안 간다.


 p.90~95

과거에는 자기 방을 열고 나가면 거실이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 즉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1인 가구는 여유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이용해 사람을 만난다. 사용하는 공간보다 더 작은 손바작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이다. (중략)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분해야 한다. 그게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 깂이든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몇 평’으로 계신되는 공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한 평이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흐름은 지금 거꾸로 1인 가구의 작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되면 개인이 사용하는 공간이 줄어들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원 같은 공공 공간도 부족하다. 이 같은 정주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각종 카페들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란 이유는 결국 우리 국민들에게 앉아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05. 공간과 건축의 역할

 p.125

쇼핑몰에 대형 서점이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자연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공간적 특징은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p.128

현재는 그런 가게들을 상가라는 한 ‘점’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한 ‘점’에서 다른 ‘점’인 상가 건물로 이동한다. 이렇듯 대형 아파트 상가 건물은 도시를 ‘점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점’이 아닌 ‘선’이다. 선형으로 상업가로가 조성되어야 사람들이 걸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p.120

[이벤트 밀도]

사람이 어떤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거리의 '이벤트 밀도'가 높아야 한다. 이벤트 밀도란 1백 미터를 걸어가면서 내가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가게 입구의 숫자다.


 p.265

서초구와 강남구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도 속속 부서지고 있는 중이다. 성형외과로 치자면 서른 넘어서 생긴 주름살을 펴서 없애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은 항상 20대 동안으로 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 노력이 심해지면 과도한 성형시술을 받은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울은 6백 년 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 치고는 너무 어려 보인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당연히 오래된 것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적당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으면 적어도 얼굴에 주름이라는 것은 남겨 두어야 한다. 지금 40년 된 건물 중에 좋은 건물들을 남겨 놓으면 백 년 후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남대문 같은 문화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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