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내고 오이, 상추, 깻잎을 사기 위해 8시 반쯤 동네 로컬 푸드에 갔다.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매대에서 오이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뒤쪽에 있는 상추 코너에 갔다. 상추 매대가 비어 있어 직원분께 “상추가 없네요?” 하고 물었다. “아직 안 들어왔어요.” 하신다. 아, 내가 오늘 일찍 와서 없는 거구나. 오후에 가면 인기 많은 채소들은 모두 나가 있어 빨리 오면 무조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은 생각을 못 했다.
그제야 보니 청양고추를 이제 막 매대에 채우고 가격 스티커를 붙이는 분이 보인다. 처음에는 당연히 직원분인 줄 알았다. 근데 가게 안에 있는 분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아니다. 두 분 빼고는 모두 농사지은 채소를 가지고 온 농부 분들이셨다. “직접 진열하고 스티커도 붙이시는 거예요?” 물으니 청양고추에 가격 스티커를 붙이고 계신 아주머니가 당연하다는 듯이 “네.” 하신다. “아, 일찍 온 건 처음이라 몰랐어요. ^^.” 그곳에선 너무 당연한 걸 묻는 내가 멋쩍어 미소 섞인 말을 덧붙였다.
꽃상추는 사이사이를 씻는 게 귀찮아 주름이 별로 없는 청상추를 좋아하는데 매대에는 꽃상추뿐이다. 토마토, 깻잎을 집으며 가게 안에 있는 분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난 커피는 뜨거운 게 좋더라고.”
“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ㅎㅎ”
“오래들 사시겄어!”
“나도 아무리 더워도 따뜻한 게 좋아.”
농사지은 토마토를 직원에게 상자째 주시는 분도 있다.
“매번 이렇게 주면 장사는 어떻게 하려고?”
“뭘 몇 푼 되지도 않는데.”
내가 계산도 안 하고 서성거리고 있으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물어온다. 꽃상추 농부 분이 아직 가게에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네, 청상추요….” 얘기했다. 그때 드디어 상추 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분이 나타났다. 맨 끝자리에 채소를 진열하시는데 이런, 청상추가 아니라 꽃상추네.
“청상추는 없어?” 나 대신 직원분이 물으신다.
“비가 와서 청상추가 이-만큼씩 자라니까 따기가 힘들어.”
크게 자라다고 무조건 내다 팔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혼자 그렇게 이해해 본다. 할 수 없이 꽃상추를 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먼저 와서 진열돼 있는 풍곡리에서 온 조천준 님이 재배한 꽃상추를 집어 들었다. 무더운 여름 땀 흘리며 키운 채소가 누군가의 장바구니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농부의 기분은 어떨까. 나도 언젠간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