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해, 성장, 성숙의 기회가 생긴다
얼마 전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중 한 명이 창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아이템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직 좋은 결과가 나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도 연락을 종종 하다 보니, 최근에 일종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나 자존감이 낮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저도 창업하고 나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 자신이 정말 병X같은 순간들이 많았어요. 근데 진짜 엄청 밑바닥까지 가니까 그런 나를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나는 항상 잘해야 된다는 일종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거의 평생 동안 나의 병X같은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근데 돌이켜보니, 그런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여유가 생기고 변화가 시작되었던 거 같다.
스스로가 병X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나 같은 경우는 혼자 창업 준비할 때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음에도 하루 종일 일을 계속 미루고 뉴스보고 모바일게임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밤늦게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갈 때가 생각난다. 나를 자책하면서 "아 왜 나는 이렇게 병X같을까"라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가는 순간이 기억난다.
그 이후에도 사실 이런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 주말 아침부터 "일해야지" 하고 사무실에 나왔는데 책상에 앉아 유튜브 보고 책을 보면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아 진짜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면서... 근데 아내랑 저녁은 먹어야 될 것 같고 그래서 한두 시간 겨우 일을 조금 하고 주말 저녁시간쯤 돌아갈 때. 아내가 "일 잘하고 왔어?"라는 이야기에 "잘하고 왔다"는 말을 하는 그런 순간.. 스스로를 정말 부정하고 싶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생 때 창업했을 때는 더 찌질했다. 공동창업자랑 같이 역할을 분담해서 투자자 미팅을 하러 가기로 했었는데, 머릿속에 내가 투자자라도 투자 안 할 것 같다는 생각과 두려움에 도저히 미팅에 참여할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다. 용기가 안 생겨서 핑계 대고 미팅을 펑크 냈고, 공동창업했던 친구에게는 그 미팅을 하고 온 것처럼 거짓말했던 정말 한심한 순간도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누구한테도 한 적이 없는 정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만큼 스스로 너무 병X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한심한 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런 나를 부인하고 혼내고 자책하면서 이겨내야 할 존재로 바라봤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다른 창업자들처럼 해야 돼, 더 열심히 해야 돼, 이겨내야 돼" 계속 그렇게 나를 혼내고 다그치는 것만 계속해왔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아마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과 이전의 모든 과정에서 그러했다.
나를 채찍질하는 또 다른 나 덕분에 성장의 기회도 생겼지만 이미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가득한 나에게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자책하면 자신감은 더 떨어지고, 이겨낼 에너지가 떨어지고, 그러면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다시 자책하게 되는 패턴이었다.
변화의 계기는 AC2를 하면서였다. 창준님한테 처음 코칭을 받는 날이었는데, 그때 내가 가져왔던 주제는 "회사나 제품의 다음 성장 방향을 찾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 근데 정작 할 것들이 많은데 주말에 일하러 와서는 관련 없는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당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는 거였다.
내가 기대했던 건 책이나 유튜브를 못 보는 방법을 만들거나 습관을 만들어서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코칭을 받는 50분 남짓한 시간에 깨달은 것은 내가 일에 집중할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주중에 이미 지쳐있는 심신인 상태에서 주말까지 아침에 나와서 일을 하려 하니 무의식적으로 자꾸 일에서 도망가고 쉴 시간을 마련하는 나를 발견했다. 근데 그렇게 쉬는 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한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쉬었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일에 더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코칭 이후, 내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활동, 휴식에 대해서 더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어떨 때 에너지가 차오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에 집중하게 되는지를 탐구하고 또 많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코칭을 받는 중간에 내가 에너지를 얻는다고 느끼는 순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치의 질문에 "나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내 숨소리를 느끼는 그 순간에 에너지를 얻는다"라고 답했다.
사실 특별한 활동은 아니다. 저녁에 혼자 저녁 먹고 사무실 근처의 경의선 숲길 공원에 산책한다거나, 아니면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서 커피 마시면서 멍 때리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매일 할만한 활동인데..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카페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활동을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하다 보니까 "유튜브를 안 봐야지, 일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에너지가 생겨서 일을 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순간을 계기로 한심했던 나에 대해 돌아보니 "그때 내가 굉장히 지쳐있었던 거구나, 그때의 나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했던 거구나, 조급했던 거구나" 하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나를 다그치고 혼내는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나한테 부족한 게 뭘까? 좀 불안하니까 이 불안을 누군가랑 대화를 나눠볼까? 지금 내가 에너지가 떨어진 것 같으니까 이런 걸 해볼까? 이거 나도 지금 잘 모르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전문가 누구랑 이야기하면 좋을까?" 이런 식의 생각들을 하면서 나를 조금 더 돕게 됐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한심한 나를 내가 돕고 지원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돕게 되었고 같이 해결방법을 찾게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와 이런 대화를 하고 시도하는 중간중간에도 병X 같은 모습은 나온다. 나도 모르게 시간을 허비하거나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나를 발견한다.
다만 이제는 그런 나를 봤을 때 “난 지금 어떤 상태일까?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나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무엇을 시도해 볼까? 나에게 필요한 건 뭘까?” 이런 식으로 나와 대화하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한심한 나를 더 빠르게 마주하고 조금 더 일찍 극복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겼다.
그래서 과거에 완벽하고 싶었던,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었던 그런 나에게 지금의 내가 묻고 싶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좀 병X같은 나를 받아주는 건 어떨까?"
나는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그 친구에게도, 그리고 항상 자신을 탓하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병X같은 나를 한 번, 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부분을 도울 수 있고, 어떤 부분을 같이 함께 시도하면서 진짜 원하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지 대화하길 바란다. 그렇게 한심한 나와 함께 공존하게 될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스스로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