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
26년 전, 나를 임신한 엄마는 3일 연속으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Tmi. 3살이던 언니는 덕분에 3일 연속으로 우동을 얻어먹었다) 엄마는 3일 내내 비빔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단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밀가루를 사랑하는 내가 태어난다. 김치는 물론이고 한식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외국에 나가도 한식이 그립지 않다. 위장만은 미쿡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거의 유일하게 미치는 한식이 비빔밥이다.
비빔밥도 나름 철을 많이 타는 음식인데 봄에는 봄나물 비빔밥, 열무 철에는 열무비빔밥, 꼬막 철에는 꼬막비빔밥을 먹어야만 그 시기를 잘 보내는 느낌이 든다.
'계란은 반숙, 짠맛을 더하는 김은 넣지 않음, 볶은 나물은 꼭 1-2개는 들어가야 하고, 먹다 남은 찌개나 국 1-2 스푼을 넣어주면 좋음, 매실 액기스도 조금 첨가!'와 같은 나만의 레시피도 있다.
이런 내 비빔밥 사랑에 대해 엄마는 '네가 뱃속에서 연속 3일이나 먹어서 비빔밥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단호히 말하곤 한다.
엄마의 근거 없는 확신은 '뱃속 비빔밥 애호설' 뿐만이 아니다.
언니가 얼굴이 노란 이유는 어릴 적에 귤을 한 박스씩 먹어 치웠기 때문이라는 '언니 귤 인종설'
호두는 뇌 모양으로 생겨서 뇌에 좋다는 '뇌&호두 쌍둥이설'
체한 거 같을 때는 밥을 먹어서 눌러줘야 한다는 '엄마는 영자 언니설'
등이 아무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로 우리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된다.
신기한 건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다른 가족에게 이유를 물었다.
동생(24살) 난 그냥 흘려듣어. 그런데 가끔 어이없이 엄마 말이 맞을 때도 있다?
언니(29살) 가족의 평화를 위해 수긍하고 넘어가는 거지. 그리고 듣다 보면 나름 맞는 말 같을 때도 있어
이런 이유 때문에 엄마의 터무니없는 말들은 20년 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20살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중고등학생 때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을 때 왜 그냥 넘어가 줬냐고,
예를 들면,
(중2) 아 엄마~ 나만 mp3 없어! 우리 반 애들은 다 있단 말이야! 지수도 있고, 민지도 있고!
(중3) 쾅! 나 밥 안 먹어!
(고2) 아 이거 아는 문제였는데, 실수해서 틀린 거야
(금요일 아침) 아, 엄마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는 거 같아. 학교 못 가겠다
이런 흔하디 흔한 거짓말을 했을 때 엄마는 한 번도 꼬치꼬치 묻거나 따지지 않았었다.
이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귀여워서'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무슨 짓을 해도 귀여운 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엄마가 하는 그런 억지스러운 말들이 귀엽게만 들린다.
오늘도 비빔밥을 비비는 내 옆에서 '어휴, 내가 너를 임신했을 때 말이야~'라고 똑같은 말을 92837번째 하는 엄마에게 '어 맞아~ 언니는 옆에서 우동을 3일이나 먹었다고 했지?'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함께 비벼지는 비빔밥은 언제나 그렇듯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