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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Nov 22. 2018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D는 안 읽었으면 좋겠다 정말

글을 쓰는 게 유일한 취미지만, 이전에 만난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편지를 써준 적이 없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만나자?' 그 말이 늘 힘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현재의 감정만을 담은 짧은 엽서로 대신하곤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추억 속에만 있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실은 A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장 오래 지켜봤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A는 나와 다른 정치 성향, 취향, 취미를 가졌다. 하지만 A는 내가 자신의 이상형이라 했다. 그래서 우린 가까워졌고 어느 순간 A를 좋아하게 됐다.


A를 만날 때는 늘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정말 좋았고 한 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A는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즈음 시작한 상담에서 A에 대해 자주 말했다. ‘선생님, A가 있는 세상에서 저는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A가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간 곳에서 B를 만났다.




B는 내 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이다. 사귈 때는 늘 나쁜 모습으로 등장해서 사람을 애태웠는데, 헤어진 이후에는 다정한 모습으로 나와서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B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악과 최고를 오갔다. 모든 걸 맞춰주는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내  미래 목표는 조금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를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이지만, 나는 한 번도 그의 스타일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늘 B의 ‘예쁘다’는 말에 목말랐다.


B와 함께한 오랜 시간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딱 그 만큼 힘들었다. 좋아했던 사람을 증오하는 건 나에게도 괴로운 일이었다.


최근의 꿈에서 그는 아름다운 해변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도 원하던 사업을 시작해서 좁지만 따듯한 방에서 누군가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나는 나 대신 B와 함께하는 그 누군가의 옆에서 B를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있었다. 더 이상 B가 밉지 않았다. 적어도 꿈속에서의 나는 그랬다.




B 이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B가 참지 못했던 나의 무기력함이 우울증 때문인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혼자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 속에서 C를 만났다. 자연스러웠지만 다분히 목적한 만남이었다. C는 유쾌했다. 하지만 C가 좋았던 이유는 A 그리고 B와 아주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C가 멋진 목소리로 구애의 말을 쏟아낼 때면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말에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해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냥 웃고, 또 웃어 넘겨버렸다. C는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C는 내 마음이 열리길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은 나누지 않은 채로 싱겁게 끝났다. 서로 아쉬움이 없는 만남이었다.




다정했던 A와 B와 C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예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A와 B와 C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준 상처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쓸데없는 고집을 버릴 수 있었다. 내 이상형인 사람만 만나겠다는 고집,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을 거라는 고집, 나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고집. 이런 고집들은 소중한 시간을 뺏어갈 뿐이라는 걸 배웠다. 헤어짐도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만남은 더 내 마음대로 안되니까.


A에게 나는 순수한 사람일 테지만, C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B에게는 순수와 나쁨 그 중간 어딘가를 헤엄치며 추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과 인연이 닿아 좋았고, 더 좋은 건 그들을 평온하게 추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내가 마지막 사람 D를 만날지, 아니면 D, E, F, G,,, 가 스쳐 지나갈지 아무도 알 수없다. 그들에게 앞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성숙한 사랑을 베풀지 혹은 지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질게 굴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온 날이나 앞으로 다가올 날이나 까마득한 건 마찬가지라 아무것도 다짐하거나 약속할 수가 없다. 하나 확실한 건 누구와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마지막 사람이길 바랄 거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이 그로 향하는 과정이길 진심으로 바라니까.


ps. 혹시나 아직 만나지 못한 D가 나중에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네가 이 글을 본다면 내가 너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증거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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