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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May 16. 2019

터무니없는 엄마의 말

내가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

대충 쓱쓱 비빈 비빔밥 (출처 insta@three_foodie)

26년 전, 나를 임신한 엄마는 3일 연속으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Tmi. 3살이던 언니는 덕분에 3일 연속으로 우동을 얻어먹었다) 엄마는 3일 내내 비빔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단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밀가루를 사랑하는 내가 태어난다. 김치는 물론이고 한식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외국에 나가도 한식이 그립지 않다. 위장만은 미쿡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거의 유일하게 미치는 한식이 비빔밥이다.


꼬막 비빔밥 (출처 insta@three_foodie)

비빔밥도 나름 철을 많이 타는 음식인데 봄에는 봄나물 비빔밥, 열무 철에는 열무비빔밥, 꼬막 철에는 꼬막비빔밥을 먹어야만 그 시기를 잘 보내는 느낌이 든다.


'계란은 반숙, 짠맛을 더하는 김은 넣지 않음, 볶은 나물은 꼭 1-2개는 들어가야 하고, 먹다 남은 찌개나 국 1-2 스푼을 넣어주면 좋음, 매실 액기스도 조금 첨가!'와 같은 나만의 레시피도 있다.  


이런 내 비빔밥 사랑에 대해 엄마는 '네가 뱃속에서 연속 3일이나 먹어서 비빔밥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단호히 말하곤 한다.


엄마의 근거 없는 확신


육회 비빔밥 (출처 insta@three_foodie)


엄마의 근거 없는 확신은 '뱃속 비빔밥 애호설' 뿐만이 아니다.

언니가 얼굴이 노란 이유는 어릴 적에 귤을 한 박스씩 먹어 치웠기 때문이라는 '언니 귤 인종설'
호두는 뇌 모양으로 생겨서 뇌에 좋다는 '뇌&호두 쌍둥이설'
체한 거 같을 때는 밥을 먹어서 눌러줘야 한다는 '엄마는 영자 언니설'

등이 아무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로 우리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된다.


신기한 건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다른 가족에게 이유를 물었다.


동생(24살) 난 그냥 흘려듣어. 그런데 가끔 어이없이 엄마 말이 맞을 때도 있다?  
언니(29살) 가족의 평화를 위해 수긍하고 넘어가는 거지. 그리고 듣다 보면 나름 맞는 말 같을 때도 있어


이런 이유 때문에 엄마의 터무니없는 말들은 20년 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92837번째 듣는 똑같은 말


20살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중고등학생 때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을 때 왜 그냥 넘어가 줬냐고,


예를 들면,

(중2) 아 엄마~ 나만 mp3 없어! 우리 반 애들은 다 있단 말이야! 지수도 있고, 민지도 있고!
(중3) 쾅! 나 밥 안 먹어!
(고2) 아 이거 아는 문제였는데, 실수해서 틀린 거야
(금요일 아침) 아, 엄마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는 거 같아. 학교 못 가겠다

이런 흔하디 흔한 거짓말을 했을 때 엄마는 한 번도 꼬치꼬치 묻거나 따지지 않았었다.


이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귀여워서'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무슨 짓을 해도 귀여운 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엄마가 하는 그런 억지스러운 말들이 귀엽게만 들린다.


오늘도 비빔밥을 비비는 내 옆에서 '어휴, 내가 너를 임신했을 때 말이야~'라고 똑같은 말을 92837번째 하는 엄마에게 '어 맞아~ 언니는 옆에서 우동을 3일이나 먹었다고 했지?'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함께 비벼지는 비빔밥은 언제나 그렇듯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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