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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지 May 12. 2023

스웨덴 친구가 만들어 준 짜장면 한 그릇


"언니 짜장면 먹을래?"


스웨덴 친구 A에게서 문자가 왔다. 며칠 전, 처음 짜장면을 요리해 봤는데 맛있었다며 나에게도 만들어주고 싶다는 거다. 나는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양이를 위탁 중인 A집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재료를 가지고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언니, 혹시 필요한 거 있어?"  


퇴근하고서 짜장면 재료를 사기 위해 아시아 마트에 들른 A. 나의 아저씨 이선균처럼 늘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준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자주 시내에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마침 김치와 간장이 떨어져서 사와달라 부탁을 했다.


A는 어디 멀리 여행 가는 것처럼 큰 배낭을 메고서 왔다. 무겁지 않았냐고 묻자 운동삼아 좋았단다. A는 자기가 강하다는 말을 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에너지가 더 넘쳐 보이기도 했다. 


요술가방처럼 온갖 재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사이에는 맥주도 있었다. 짜장면 먹자고 얘기 나눌 때 단유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기념 삼아한 잔 하면 좋을 것 같다며 들고 왔다고 한다. 


우리 집에 자주 왔던 친구라 뭐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잘 찾아서 사실 내가 일일이 말해주는 거 없이 A는 혼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사람이 만드는 한국식 짜장면이라?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생각해 보면 떡볶이, 볶음밥을 같이 만든 적은 있어도 A 혼자서 한국 음식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A는 요리하고 있고 나는 굳이 거들지 않으며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고 말했으니 말없이 지켜보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일은 어떠냐, 애들은 학교 잘 다니냐 우리는 그간 하지 못한 일상 업데이트를 했다. A가 음식을 다 만들어 갈 때쯤 나는 그릇 세팅을 하고 주변 정리하는 걸 도왔다. 요리 시작한 지 20분 만에 뚝딱 짜장면을 완성했다. 냄새도 모양도 정말 한국서 먹던 짜장면과 매우 흡사했다. 




맥주 한 잔 들이켠 후 짜장면 면치기를 시작했다. 후루룩후루룩, 한국을 모르는 이에게는 비매너로 보일 수 있겠으나 A는 그 소리가 '맛있다'는 걸 알 정도로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친구였다.  


왠열.. 너무 맛있는데? 진짜 잘 만들었다고 말하자 자기가 요리는 좀 한다고 흐뭇해했다. 짜장면 한 그릇 후딱 먹고서 남은 맥주 마시며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A는 본인이 아팠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동안 사람 만나는 게 다시 힘들어서 그런지 약속 날짜 당일에 취소하고 피했던.. 마음이 아파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친구를 만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 거야. 그래서 또 직전에 약속 취소하고.. 변경하고..."


사실 몇 달 전부터 A가 연이어 약속을 네 번 취소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런 일방적인 통보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떤 약속은 두 달 전부터 계획된 거라 아주 많이 김이 샐 때도 있었다. 네 번째 약속이 취소되는 순간, 나는 알겠다 말하고서 사실 A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A를 알게 된 지도 6년. 마음의 병으로 오랜 심리상담을 받아온 친구를 이해하고 싶다가도 그간 같은 패턴을 겪으며 나 또한 감정이 지칠 때로 지쳐갔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다치기 싫은 마음에 그냥 멀어지는 걸 택했다. 솔직히 약속을 소홀이 여기면 안된다 말하고 싶다가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은 건 그냥 그 친구에게는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어서였다. 마음이 아픈 걸 알기에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싫었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그게 고쳐질 게 아니란 걸 알아서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길 바랐고 굳이 잘못을 따지고 싶지가 않았다. 기다림일 수도 혹은 회피로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A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취소했던 얘기를 들려주며 그게 얼마나 미안하고 잘못된 일인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네가 아픈 걸 그 친구도 알지 않냐, 그 친구도 이해해 줄 거라고 위로했다. 최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속상한 일을 겪어서인지 힘들어하면서도 네가 곁에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언니 정말 많이 고마워"

나도 A가 곁에 있어서 좋다고 웃어 보였다.


약속을 자주 취소하는 자신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남에 이야기처럼 듣고서 내가 위로를 건넬 때 그게 우리 이야기란 걸 알고 있었다. 서로 연락이 소홀해졌단 걸 느꼈기에 더 멀어지고 어색해지기 전에 A가 먼저 찾아와 준게 아닐까.  


자신은 강하는 말에 A가 마음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가져오고서 어색함을 풀고 싶고 또 힘겹게 자기 결점을 털어놓으며 이 모든 게 고의가 아니었단 걸 전하려는 진심이 조심스레 느껴졌다.  


나는 A에게 자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자고 말했다. A가 평소 좋아하는 스웨덴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A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스웨덴 음식보다 한국음식이 맛있다며 그냥 떡볶이 해 먹자고 다음 메뉴를 정해버렸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기분이 풀어지냐 싶다가도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음식은 맛을 떠나 한 편의 좋은 영화처럼 그 여운이 깊게 남는다. 스웨덴 친구가 만들어 준 짜장면이라 더 기억에 오래 남을런지도. 


알레르기 약 먹고 떡볶이 재료 챙겨서 가까운 시일 내 A의 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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