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유치원에 일일부모교사로 갔을 때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뭘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할까 고민을 하다가 붓글씨를 가져가게 되었다.
"이름이 뭐야?"
"올리버 (Oliver)"
"자, 올리버 봐바, 이렇게 쓰는 거야 "
그런데 글은 쓰지 않고 올리버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왜 당신은 내 이름을 이상하게 말해요?"
"응? 이상하다고?"
순간 속으로는 뜨끔했다. 얼굴 표정만 봤을 땐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아리송한 쪽에 가까웠다. 어떤 발음이 잘못된 된 걸까? Oliver인데 Oliber로 발음한 걸까? 아니면 L발음을 R로 한 것일까?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나를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아들도 보였다. 혹시 스웨덴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래서인지 스웨덴사람처럼 유창하게 발음하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싶었다.
"올리버, 나는 한국 사람이고 스웨덴 사람처럼 발음하는 게 좀 어려울 때가 있어.
다시 천천히 네 이름을 말해보겠니?"
하지만 올리버는 다시 듣고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이 발음한다고 했는데 도통 내 발음을 낯설어했다. 말할수록 유창하게 보인다기보다 누군가를 흉내내는 원숭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후에 머릿속에선 발음 경보가 울렸다. 자기 이름을 써주길 기다리는 아이들, 즉 내가 말해야 할 다양한 이름들이 대기 중이었다. 이게 한국 문화 체험인지 스웨덴어 발음 테스트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아들 앞에서 말 못 하는 엄마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상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싫었다.
유치원을 다녀온 뒤에도 남아있는 이 찝찝한 기분. 솔직히 풀이 좀 죽었다. 아니 많이 죽었다. 발음이 왜 이리 엉망인걸까 공부 한다고 하는데 왜 계속 제자리걸음인 걸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쯤 나는 스웨덴 사람처럼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렇게 될 수 없을 거 같아서 더 기운이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몇 주 뒤 아들의 친구들이 놀러 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세 명이 쪼르륵 서있는데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혹시 발음 이상하다고 하면 어쩌나 신경 써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려 했다.
한창 놀다가 아들이 배가 고팠는지 팬케이크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 말에 얼른 구워다 주었는데 아들 친구의 음식 취향은 몰라서 시럽과 과일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트리앙쥐(Triyansh) 먹고 싶은 과일을 그릇에 덜어서 먹어"
그러자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내 이름을 트레앙쥐라고 불러요?"
순간 급속냉동고에 들어간 것처럼 머릿속이 얼어버렸다. 또 발음을 실수한걸까? 당황해서인지 몇 초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미안해. 내가 네 이름을 잘못 말했니?"
"당신이 이렇게 말했어요. '트리앙쥐'" 신기한 듯 내 발음을 따라 해보았다.
아 그렇구나. 미안해. 트리앙싀, 시? 이렇게 말하면 되니?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트레앙 '쥐'? 저 그거 좋은데요?"
예상밖의 답변이었다. 내가 말한 자기 이름이 쿨하다며 그렇게 계속 불러달란다. 새로운 애칭처럼 좋다는데 그 말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싱긋 웃어버렸다.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도 가치가 있다는 건가.
외국어 공부라는 게 참 신기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는 실망감이 크다가도 어떻게 또 말이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말하고 싶은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진 않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외국어를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해도 또 누군가는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것처럼
나답게 주눅들지 말고
오늘도 용기를 내어 언어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