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지 Feb 15. 2024

보내지 않으려다 보낸 문자

 


나는 카톡에 생일 공개를 하지 않는다. 정말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받아도 축하는 충분해서인 것도 있고 공개를 하면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는 건 아닐까 해서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물을 수 있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다. 정말 친한 사람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건 

고맙지만(잊어버릴 때도 있으니) 생일 문자를 보낼까 말까 생각하게 되는 애매한 관계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여긴다. 왠지 알면서 모른척하는 것 같아서일까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진다. 


몇 주 전 카톡에 대학 동창 A의 생일 알림이 떠있었다. 오랜만이라 어색하지만 또 반갑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는 자주 술도 먹고 놀았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스웨덴에 살면서 가끔 하던 안부 인사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얼굴을 안 본지는 벌써 7년이나 되어버렸다.


"오늘이 생일이구나" 사실 축하 메시지는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날따라 친구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니 아주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찍은 야경사진. 그런데 아경은 좀 거들뿐 바닥에 앉은 채로 신발을 메인 모델처럼 올린걸 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웃어버렸다.  


"지 얼굴 안 올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하루종일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을 돌보며 밥 먹이고 집 치우고 빨래 좀 돌리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가 되었다. 아기가 휴대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아예 멀리 두고 보지 않다가 연락 온게 있나 싶어 확인하려는데 다시 그 친구의 생일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한국이 몇 시지? 10시 정도 됐으려나..? " 


그냥 축하한다고만 보내볼까?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기에는 또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내 할 일을 하려 했다. 그런데 불현듯 친구들과 차를 타고서 새벽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모르는 시골길을 헤맸던 기억이 떠올랐다. 운전했던 친구가 완전 초보라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동네는 A가 살던 곳이라 자신이 알아보겠다며 차에서 내려 길을 살펴 보려했다. 그런데 차문을 여는 순간 똥과 흙이 뒤섞인 듯한 매스꺼운 냄새 진동하기 시작했다. 


"야 이 똥 냄새 뭐야" 어찌나 강하고 독한지 다들 냄새를 피하려 코와 입을 막긴 했는데 소리를 지르면서도 웃음도 따라 새어나왔다. 똥냄새가 왜 웃긴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바탕 깔깔거렸다. A 말로는 근처에 소 키우는 곳이 있다는데 나름 도시에서 밖에 산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순간만큼은 그곳이 깡시골처럼 느껴졌었다. 같이 차 타고 있던 다른 친구가 A를 향해 "야 이 촌놈아 이 소똥 냄새 어찌해 봐" 밑도 끝도 없이 A에게 소똥 냄새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놀려댔다. 


그때부터 친구들은 A에게 촌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씩 웃어보이며 자기 덕에 공기 좋은 곳 구경 잘하는 줄 알라며 넉살 좋게 받아치던 친구였다. 


다시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다음 날로 넘어가진 않았다.


"좋은 하루 보냈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 


오랜만이야 잘 지내니?로 시작해 보았다가 좀 머쓱해져서 담백하게 그냥 생일만 축하하자 생각했다. 그런데 

한 이십 분이 지나자 A에게서 답장이 왔다 


"으악 오늘 소식 중에 젤 반가운 연락이다. "


순간 미안함이 들면서도 기분이 좋았던 건 안 보내려다 보낸 톡을 기뻐하는 게 느껴져서다. 그렇게 짧게 그간 어찌 살았는지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나눴고 친구는 며칠 뒤 다른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데 혹시 그때 연락을 해도 괜찮을지 물었다. 10년 가까이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괜찮으려나? 아기와 함께 있어서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연락을 해보라고 말했다. 


이틀 뒤 아이 점심을 먹이고 있는데 A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음성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굳이 영상통화를 하잖다. 쌩얼에 추리닝 차림이라 전화를 받을까 말까 찰나에 고민을 했지만 그냥 딸아이 얼굴을 비추면 되지 싶어 전화를 받았다.


다섯 명의 친구들. 대학 다닐 때는 나름 잘 지냈는데 다들 어찌 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휴대폰 들고 있기가 어렵기도 했고 얼굴을 보기는 영 쑥스러워 딸 얼굴만 보여주고 음성으로 전환했다. 


대학 졸업하고서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는 C 동창은 "아 어색한데"라고 나지막이 말하는 게 들렸다. 사실 나도 불편하고 어색한 건 마찬가지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서먹하게 잘 지냈냐고 십수 년 만에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나에게 결혼 한 건 들었다며 축하한다 말해주는데 " 음.. 고마워 근데 올해로 결혼 10주년 됐어"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 웃어버렸다. C는 결혼한 지 2년 차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늦은 감은 있지만 결혼 축하한다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딱히 근황이라고 전할 게 출산과 육아뿐이라 하자 자기도 아들 하나가 있다고 말하는 B 동창. 그렇게 자식 이야기를 좀 하다가 아직 장가 안 간 D 동창과는 장난 많이치며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넌 예비신랑 수업 삼아 여기 와서 애 좀 봐주라 " 말하니 "지금 출발하면 스웨덴에 내일은 도착하려나?" 예전처럼 농담도 주고받았다. 


십수 년 전이지만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켜켜이 묻어있던 내 기억의 창고에서 추억들이 마구 소환되었다. 덩그러니 흩어져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알아서들 맞춰져 가고 있는데 그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C하고는 술 먹다가 논리싸움 했었고 D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위로도 해줬는데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전화를 끊고서도 여러 다른 기억들도 떠오르며 이내 예전 사진첩을 뒤지고 추억 여행에 빠지게 되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내 젊은 시절의 시간들. 그땐 그랬었지 하며 즐겁게 그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사실 통화하며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 기분자체가 불편하진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과거를 추억하며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가며 즐겁게 살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D 동창의 생일 알림에 떠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생일 축하한다 XX야" 내가 대학 시절 친구를 부르던 별명을 남겼다. D도 "고맙다 다정아~~" 예전 내 별명으로 나를 불러주었다. 내가 왜 다정이었더라? 개그콘서트에 김숙이 난다정이라는 캐릭터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머리스타일이 닮았다고 했던가? 아님 옷이었던가? 아무튼 그 둘 중 하나였던 거 같다. 


이후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다른 메시지는 모르겠지만, 축하하는 건 조금 덜 망설여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보내지 않으려 했는데 보내길 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원 버스에서 우는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