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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브랜더 시내 Mar 26. 2021

아이유를 왜 좋아하냐고요?

쓰고 싶어서 쓰는 덕질의 역사


아이유의 정규 5집이 발매되었다. 퇴사를 하니 마음껏 덕질을 할 수 있어서 어제 새벽부터 열심히 지난 노래들까지 들춰보며 밀린 덕질을 벼락치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아이유를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대답으로 ‘예뻐서’, ‘노래가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랜 역사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문득 나의 덕질 역사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금사빠인 나는 아이유 말고도 버즈, 박정현, 브루노 마스, 빈지노, 백예린 등 다수의 아티스트를 좋아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내 기쁨을 위해 써보기로 한다.

 


버즈와 아이유
첫 덕질의 시작

내게는 가슴 아픈 첫사랑은 없지만 상처만 남긴 첫 덕질의 역사가 있다. 바로 버즈의 민경훈. 그가 군대에 다녀온 후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에도 즐겨보지 않았다. 그의 사차원적인 매력은 버즈 팬들에게는 유명했기에 어떤 면이 예능인으로 그를 재조명하게 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애증의 전 남자 친구 소식을 들었을 때, “맞아, 걔 그런 거 잘했지. 한동안 일이 안 풀리는 것 같더니 적성을 찾았다니 잘됐네..” 하는 마음이었다. 18년도에 ‘그때 우리 모두가 버즈였다’라는 문장으로 버즈의 노래들이 재주목받아서 페스티벌에 초대된 민경훈의 무대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이미 짜게 식은 마음이라고 외면하려했지만 ‘낡은 하모니카, 손에 익은 기타~’에 중학생 때로 돌아간 듯 감정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이렇게까지 향수를 불러이르킬 수 있다니 음악의 힘은 대단하구나 느꼈다. 페스티벌을 계기로  그 당시 활동했던 ‘노래하는 경훈이’ 카페에도 들어가고 잠시 동안 향수에 푸욱 젖었던 것 같다. 덕질을 할 당시에 돈도 없고 꽤나 공부를 잘 하고싶어하던 학생이었는데도 이것 저것 사고 콘서트 가고, 그러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왜 덕질을 그만두게 되었냐고? 버즈가 활동을 중단하기 전에 그에게는 작은 스캔들이 있었다. 뮤비에 출연했던 치어리더와 사랑에 빠졌다는 기사를 보고 적잖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중학생 나는 남자 연예인은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그 다짐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버즈 다음으로 좋아했던 가수가 아이유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정규 1집 수록곡인 ‘있잖아’라는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즐겨 들었는데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중에 ‘바람꽃’이라는 ost가 좋아서 찾아보니 같은 가수였다. 너무 어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고, 나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같은 공간에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묘한 선후배 관계라는 심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되었다.(이래서 학연이 무서운가 보다) 그 계기로 아이유의 노래가 나오는 족족 찾아 듣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와 ‘여자라서’ 들으면서 첫 이별을 했던 귀여운 기억도 있다. 뭐 그 후에는 워낙 빠르게 유명세를 타고 아이유를 좋아한다고 명함 내밀기도 어려울 만큼 인기가 많은 ‘좋은 날’과 ‘잔소리’의 국민 여동생 시절이 있었다. 너무 화제를 몰고 다니다 보니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과하게 욕을 많이 먹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에는 멀리서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것 같다.


천부적 재능
박정현과 브루노 마스


20살에 ‘꿈에’라는 곡을 듣고 박정현에게 한창 빠졌었다. 박정현은 그 당시에 ‘나는 가수다’로 반짝 떴는데도 내 덕질 역사 중에 가장 콘서트 티켓 예매가 쉬웠다. 저평가 되어 있는 재야의 고수이다. 음원이 콘서트에서의 감동을 담을 수 없는 가수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비긴 어게인에서 화제가 되고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도 여전히 저평가되어있다고 생각될 가수다. 작곡이나 작사 빼고 가수라는 직업만 놓고 보았을 때 박정현을 이길 수 있는 가수가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실력으로 최고야!”라는 자부심에 한 2년 정도 우러러보았던 가수였다. 학교도 내가 가고싶었던 컬럼비아 대학원을 간 본캐와 부캐가 모두 잘난 엄친아였다. 덕질에서 빠져나온 이유는 아마도 그 어린 나이에는 깊이 이해할 수 없었던 가사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22살부터 제2의 마이클 잭슨이라고 생각하는 브루노 마스와 빈지노에 차례대로 빠졌다. 두 남자 모두 음악으로 시작된 관심이 아티스트에게로 이어졌다. 브루노 마스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지?’라는 충격으로 시작한 덕질이었다. 내한을 딱 한번 했는데, 콘서트에서 받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Grenade’(사랑노래에 수류탄이 제목이라면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와 ‘It Will Rain’(‘네가 나를 떠난다면 내 방문 앞에 모르핀도 남겨줘’)와 같은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가슴 시린 이별 가사를 잘 쓰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Marry You’나 ‘Just the way you are’와 같이 유명한 곡들을 보면 여자가 듣고 싶은 말이 뭔지 너무 잘 아는 남자다. ‘Uptown Funk’나 ‘Treasure’를 들으면 흥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행복해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Count On Me’ 하나만 더 소개하고 싶다. 아니 ‘The Lazy Song’도!!  암튼 키가 165여도 상관없을 만큼 매력적인 전현무.. 브루노 마스는 천재다. 하지만 다작을 하는 편은 아니어서 마음이 서서히 멀어졌다.

 


다시 태어나면
빈지노로


빈지노도 브루노 마스만큼 천재인데 다작을 하는 성실한 아티스트였다. 그가 얼마나 다작을 하는지 알면 외모 덕에 성공했다는 게 어이없는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빈지노를 처음 알게 된 곡은 재지팩트 시절의 ‘Always Awake’. 지금은 그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모두 사랑하지만, 당시 원숭이 상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철저히 그의 가사에 반했었다. 그의 가사가 얼마나 시적이고 특별한지는 모든 곡을 근거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지만, 안그래도 긴 글이 더 길어질 테니 그러지 않도록 하겠다. 내가 그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극도의 솔직함 때문이다. 내가 아는 빈지노는 돈이 되든 안 되는, 욕을 먹든, 멋지지 않든 일관되게 자신의 이야기만을 고집한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Aqua Man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허구라고 했는데, 아마도 [24:26] 앨범이 가장 상업적으로 만든 앨범이 아닐까 싶다.) [24:26] 뜨고 나서 나이키 슈즈나 아쿠아맨 정도의 히트곡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온갖 비판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어쩌라고’, ‘난 너네 피드백이 필요 없어 솔직히’라고 말하며 일반인들에겐 공감 안 가는 가사들을 써냈다. ‘Dali, Van, Picasso’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데도 주목을 받았지만, 솔직히 [12] 앨범에 있는 노래들에서 성공한 빈지노의 이야기는 잘 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 피드백을 꾸준히 받으면 누구라도 흔들리고 대중의 잣대에 자신을 맞출 법도 한데, 빈지노는 그러지 않았다. 숨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피쳐링을 하며 예술가처럼 살았다. 그리고 빈지노가 가사에서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내게 큰 영향을 준 부분이다. 최근에는 ‘스텝들 헌신도 난 버릴 수 없지 그들이 없다면 나도 없지 Self made는 다 거짓’이라는 겸손함까지 갖춘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도덕책.. 암튼 빈지노 이야기를 하면 TMI가 되는 그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이상향이다. 즉, 다시 태어나면 빈지노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잘생긴 래퍼가 아니라 자유로운 예술가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램인 것이다  


혼자 좋아하고 싶었던 그녀
백예린

마지막으로 깊게 덕질하고 지금까지 참 좋아하는 백예린이 있다. 백예린은 15&에서 I Dream을 처음 불렀을 때 목소리에 충격을 받았던 아티스트이다. 15&에서의 활동이 아쉬웠지만 목소리는 언제나 취향 저격이었다. 목소리만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사까지 잘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완벽한 사람을 덕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주를 건너’는 내가 연애를 가장 오래 안 하던 시기를 버티게 해 주었고, ‘bye bye my blue’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내 취약한 자존감을 너무 잘 표현해줘서 들을 때마다 위로를 받았다. 예린이 노래는 사랑을 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알고선 공감해주고 위로해준다. 첫 미니 콘서트를 한다고 했을 때 벅스뮤직에 댓글로 얼마나 ‘우주를 건너’를 좋아하는지 장문의 글을 써서 당첨이 됐다. 누구보다 먼저 올림픽공원에 가서 기다린 덕에 앞에서 두 번째 줄에서 백예린의 공연을 봤던 것이 훈장처럼 남아있다. 당시에는 자신의 앨범에 6곡이 전부여서 다른 이들의 곡을 커버가 반절을 차지했지만 정말이지 황홀했다. 그 후로도 공연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다 유명한 Square의 무대들도 직관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 기쁘면서도 슬픈 점은 백예린이 유명해질수록 예전에는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티켓들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콘서트에 너무 가고 싶은 나머지 중고나라에서 거래하다가 사기를 당했다. 세 명이서 티켓팅을 했는데 모두 실패해서 못 갈뻔한 적도 있다.(기적처럼 친구의 친구가 구해줬다는..) ‘내가 먼저 좋아했어!’라고 유세를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좋아했던 모습이 변해가는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지만, 목소리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모습도 충분히 예쁘지만 예린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 하면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아이유
아름답고 안쓰러운


아이유를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더 연민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도전들에 대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했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구설수에 올랐을 때에도 묵묵히 기다리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왜 아이유가 이 작품을 골랐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더 기뻤다. 연기자로써도 흠이 없을 뿐 아니라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나는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좋은 앨범을 낼 것이고, 더 좋은 아티스트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한동안 걱정을 했었다. 절친이 자살하는 일을 겪은 사람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에잇’의 밝은 멜로디에 부르는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자는 가사에는 언제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드라마에서 그녀가 울면 왠지 나도 울게 되고,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지은이는 삶의 풍파를 통해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단단함을 보는 나도 단단해진다. 오히려 언니같이 느껴지고, 그녀를 더 닮고 싶어서 그녀가 한 말 하나, 그녀가 읽는 책에도 관심을 갖는 내가 되었다. 예를 들어 아이유가 ‘대화의 희열’에서 ‘아이유는 어린데 참 잘한다’라는 평가에서 ‘어린데’를 빼고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그녀를 프로듀싱을 하게 했다는 말이 내게 참 와 닿았다. 회사 밖에서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때문에 불안하던 내가 아이유를 보고 회사라는 거품을 뺀 나의 실력을 확인해보자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아이유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듯 한마디로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 내외면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무도 내 덕질 역사에 관심이 없겠지만 이렇게 신나서 글을 쓴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저들에게 쏟은 시간과 돈이 낭비가 아니라 그들이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세계관이 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좋아해서 철새같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위 6명 밖에도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너무 많다. 권진아나 프롬, 이예린, 새소년, 악동뮤지션, 정승환 등도 아마 시간이 지나면 덕질에 역사에 쓰일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이었고,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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