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코끝이 시리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유치원의 새 학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맘때의 유치원은 대개 안팎으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낯선 환경,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저마다 애를 쓰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지요. 특히 이제 막 입학해 처음으로 유치원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는 다섯 살 아이들은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처절하게 우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적응해 세상 발랄하게 유치원 생활을 즐길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요.
올해 저는 일곱 살 반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유치원에서의 일곱 살은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치를 가진 존재예요. 유치원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유치원에서의 하루가 대략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엇을 스스로 해야 하고 어떤 규칙들을 따라야 하는지 등 유치원 생활에 관해서는 이미 빠삭하거든요. 하기야,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유치원 3년 차 아이들이니 오죽하겠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3월에 눈물을 흘리는 일곱 살은 주변 어른들로부터 대개 이런 말들을 듣곤 합니다.
“일곱 살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우니? 너보다 어린 동생들도 저렇게 씩씩하게 들어가는데.”
“같은 반에 아는 친구들 많잖아. 뭐가 무섭다고 자꾸 울어.”
아무리 이런 핀잔을 듣는다 한들,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이 감정이 어디 자기 뜻대로 될 리가 있나요? 세상에서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바로 ‘내 마음’인 걸요. 작년, 재작년 학기 초 적응이 힘들었다던 아이들 몇몇은 올해도 여전히 빨개진 눈과 코로 교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승민이는 좀 달랐어요. 3월 한 달 내내 울음에, 등원 거부에,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는 신체화 증상까지 보였다는 작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저 역시 속으로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저와 처음 만난 날, 승민이는 이 각오가 무색할 만큼 제법 의연한 일곱 살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설 땐 살짝 긴장된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눈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일곱 살이 되더니 많이 컸나 보다며,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라는 승민이 어머니의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이었어요.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현진이의 모습이 등원하던 승민이의 눈에 띄었나 보더군요. 겉옷과 가방을 정리하고 물통과 수저통을 바구니에 가지런히 놓은 후, 승민이는 현진이의 옆 자리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나도 사실은... 울고 싶거든.”
승민이가 현진이에게 건넨 첫마디였어요.
그러고는 울고 싶어도 참아야만 하는 일곱 살의 무게와 자신만의 극복 방법(?)에 대해 한참을 털어놓더군요. 이제 유치원 최고 형님반이니 예전처럼 굴면 안 된다더라, 울지 않고 가면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교실에 오자마자 바로 하고 싶은 놀이를 시작하면 눈물 참기가 좀 더 쉽더라, 한 번씩 배가 아프기도 한데 그것도 놀다 보면 까먹어지더라 등등... 가만히 듣고 있던 현진이는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간간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놀이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하는데 내게는 참 쉽지 않은 그런 일들이 있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부분은 늘 지내던 편안한 곳에서 학년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여기지만, 승민이와 현진이에게는 새로운 선생님, 모르는 친구들, 낯선 교실에 자신을 맞추어야만 하는 이 시간이 힘들고 버거웠을 거예요. 그리고 그 마음이 서로에게는 고스란히 보였을 테고요.
현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해 준 승민이,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쓰던 승민이의 진짜 마음을 꺼내어 볼 수 있게 해 준 현진이.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도우며 또 하루만큼 자라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