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서로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러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아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1. 아이와 같은 높이에서 시선을 맞추고 몸은 서로를 향하게 한다.
2. 일방적인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한 명, 한 명 눈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처음 발령을 받아 근무했던 유치원에는 한 교실에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교사는 단 한 명, 저뿐이었고요. 그러니 때에 맞는 교육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사고 없이,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일과를 보내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에까지 가닿을 수 있는 에너지가 제게 남아있지 않았던 거죠.
저는 아이들이 궁금해서 유치원 현장에 왔습니다. 어른들의 눈과 말로 걸러지지 않은, 어린이 본연의 모습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깊이 이해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학급’이라는 집단의 운영에 초점을 맞추어 몇 해를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비로소 저의 갈증이 해소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책의 토대가 된 ‘일곱 살 마음 읽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일곱 살 마음 읽기 프로젝트는 모든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원대한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교실에 있는 동안에는 한 아이에게 집중하여 대화를 나누는 일이 불가능했기에, 방과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오후 놀이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을 만났어요. 장소는 유치원 내 도서관이었고요.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폭신한 소파와 귀여운 인형들이 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담이었기에 학부모님들께 먼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리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거쳤습니다. 혹여 아이를 통해 사적인 이야기가 교사에게 전해질 것을 염려하거나 꺼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하여 매일 한 명, 혹은 두세 명의 아이들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 놀이와 공부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묻고 들어보기도 했어요. 각종 업무로 정신없이 바빴던 시기에도 이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애를 썼지요.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도 이 시간의 길이만큼 쌓였고요.
대화를 녹음한 파일들과 이를 정리한 기록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기록들을 정리하는데, 아니 글쎄 이걸 저 혼자만 알고 있으려니 너무너무 아까운 거 아니겠어요?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는 순도 100% 어린이의 마음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대체 어린이의 마음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지, 어린이를 더 잘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여러분들께만 살짝 들려드리려고 해요. 저와 우리 아이들이 나눈 보석 같은 이야기를요.
웃기면서도 엉뚱한, 가끔은 짠하고 마음 아프기도 한, 때론 이마를 탁 칠 만큼 놀라운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 이 마음들을 함께 들여다보고 나면, 지금껏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바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