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직장에서 신사업 기획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업무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의 일이고, 당신에 주어진 지시는 오직 '당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자유롭게 구상해 보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어요.'라는 멘트뿐이라면?
이 상황에서 쉽고 편안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펼쳐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앞선다. '상사가 시키니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을 하더라도 이 방향이 맞는지, 엄한 곳에 헛발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혹여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간절하게 주위를 살피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 다행스럽게도 당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났다고 해보자. 그가 이 사업의 목적, 예산의 규모, 이전에 이와 비슷한 기획을 했었던 사례, 꼭 반영해야 할 혹은 절대 담아서는 안 될 내용을 알려준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해 준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불안의 수준이 확 낮아지며 이제야뭐라도 좀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쩌면 물 만난 고기처럼 당신이 가진 모든 실력을 끌어내 주어진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와 같은 '성장 과업'을 경험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믿을 만하다고 느끼는 사람, 양육자를 찾는다. 이때 아이가 양육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지금이 자신에게 안전한 상황이라는 믿음,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한계선.
성인과 달리 아이들의 경우 한계선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지적으로도 그 인과관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익숙한 방식인 울기, 떼쓰기, 징징거리기 등의 방법을 쓴다. 어떤 아이들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흥분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이와 같은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라면, 적절한 한계선 설정이 제공될 경우 대개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행동이 사라진다.
아이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지켜주기 위해서든, 창의성과 상상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든, 틀에 박힌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서든,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든, 최소한의 가이드도 없이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해 봐.'라는 식의 양육법은 결과적으로 아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양육자의 역할은 한계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 수준, 그리고 아이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한계의 범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