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재원생, 그러니까 이전부터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들로 구성이 되는데요. 많지는 않지만 다니던 곳을 옮겨 새로운 유치원에서 신학기를 시작하게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반에는 두 명의 남자아이가 새로 왔어요. 유준이와 선호. 모든 것이 낯선 상태이기에 아무래도 신학기 적응 기간 동안에는 이 두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썼습니다. 이전에 다녔던 기관은 어땠는지, 왜 옮기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유아교육기관은 유치원인지 어린이집인지, 유치원 중에서도 공립인지 사립인지에 따라 운영 방식이 꽤나 차이가 나거든요.
여섯 살까지 어린이집에 다녔다는 유준이는 유치원에 맨 처음 입학한 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공부를 많이 할까 봐 걱정이 된다고도 했고요. 우리 반에서 같이 놀이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물었을 땐 '안경 쓴 애'라며 선호를 지칭하더군요. 이 유치원에 처음 온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름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유치원에 와서 제일 힘든 거는요... 어린이집에서는 아침에 가면 간식을 주거든요. 근데 유치원은 간식을 안 먹고 우유를 먹어서 속상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를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털어놓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꾹 참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유준이가 왜 이걸 가장 속상해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급식실에서 음식 냄새가 풍기면 신나게 놀다가도 그 냄새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 아이,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꼭 그 반찬의 이름을 물어보며 “잘 기억했다가 엄마한테 말해줄 거예요. 그래야 집에서 또 먹을 수 있어요. 이건 너무 맛있어서 꼭 다시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바로 유준이었거든요. 인생 7년 차에 이미 식도락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다양한 오전 간식을 맛보던 삶에서 매일 똑같은 우유만을 마셔야 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유준이에게는 참 속상할 만도 했지요.
탕후루처럼 꽂아서 먹으면 100배는 더 맛있다던 유준이.
점심시간이 즐거운 유준이와는 달리, 선호에게는 유치원에서 하는 것 중 밥 먹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전에는 각 반 교실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곳에선 급식실로 다 같이 이동해 밥을 먹어야 했거든요. 급식실 규모가 크다 보니 밥과 반찬, 국이 담긴 식판을 들고 저 멀리 있는 자리까지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 오가는 아이들이 많아 북적거리는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것 역시 신경이 쓰였나 보더군요. 그럼에도 선호는 우리 유치원으로 온 지금이 참 좋다고 했습니다.
“OO유치원에서는 놀이 시간이 적었어요. 가끔은 (놀이 시간이) 1초만 있었어요. 0초 논 적도, 안 논 적도 있고요. 거기서는 책 가지고 공부만 했거든요. 여기선 그런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선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 유치원에서의 생활이 이 아이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을지를 생각합니다. 선호의 말처럼 정말로 놀이 시간이 하나도 없이 하루 일과가 짜여있진 않았을 거예요. 다만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즐겁게 놀았다’라고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겠지요.
이 유치원은 한글, 한자, 수학 학습지에 원어민 영어 수업까지 ‘공부’를 많이 시키는 유치원으로 입소문이 난,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거든요. 거기에 골프와 발레 수업, 각종 체험 행사까지 쉴 틈 없이 해내야 했으니 놀이 시간이 1초 만에 끝나버렸다는 선호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경험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씁니다. 예쁘게 다듬고 포장해서 “짜잔!” 하고 내보일 수 있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그러나 어린 왕자의 말처럼,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어 사고의 폭을 넓히며, 궁금한 것을 탐구하여 배움으로 이어가는 시간.
이 보이지 않는 귀한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 선호의 말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제 마음 한편에 머물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