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밝음 Oct 15. 2024

4. 나랑 선생님이랑 누가 더 빨리 먹을까?

어린이는 매일, 매 순간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지요. 일곱 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이전과는 달리 꽤나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경우에 따라선 반례를 들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거죠. 


저명한 발달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는 2세부터 7세까지를 ‘전조작기’라고 명명하며 강한 자아중심성으로 인해 객관적, 논리적 사고가 어렵다고 하였는데요. 이 이론이 나오고부터 무려 7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현재의 아이들이 아동발달 전공서에 담긴 이론보다 더 앞선 모습을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5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한창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대각선 앞쪽에 앉은 민호가 제 식판에 남은 밥과 반찬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랑 나랑, 누가 더 빨리 먹을까?”


이 말을 듣고는 민호의 식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은 음식의 양이 저와 얼추 비슷하더군요. 양 옆 아이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저와 민호의 식판을 향해 오갔어요. 그러더니 생각지도 못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이 더 빨리 먹지. 선생님이 훨씬 더 크잖아. 입도 크고.”

“맞아, 그리고 선생님이 우리보다 더 늦게 먹기 시작했는데 지금 비슷해졌으니까 더 빠른 거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반론이 제기됩니다.


“민호가 입이 더 작은데 벌써 이만큼이나 먹었잖아. 민호 엄청 잘 먹어.”

“민호는 이거 세 번 만에 다 먹을 수 있을걸?”


주로 눈에 보이는 차이와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누가 이길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던 중 규리가 한 마디를 툭 던졌어요.


“선생님은 민호보다 크니까, 똑같이 남은 걸 누가 더 빨리 먹는지 대결하는 거는 공평하지가 않잖아. 민호는 쪼금 남겨도 먼저 다 먹은 걸로 해야지.”


문제 자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저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었지요. 규리의 이야기를 들은 몇몇 아이들이 저와 같이 ‘아하!’하며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또 다른 몇몇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요. 지원이는 이 말에 또다시 반대 의견을 내놓습니다.


“근데, 맨 처음에 급식받을 때 선생님은 크니까 많이 받고, 우리들은 조금 받잖아. 근데 똑같이 남아있는 거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더 많이 먹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선생님은 선생님껄 다 먹어야 되고, 민호는 민호껄 다 먹어야 끝이 나는 거야.”


저와 민호, 두 사람의 신체적 차이뿐만 아니라 배식량에서의 차이를 함께 고려하여 판단할 정도로 토론의 수준이 높아져 갈 즈음, 급식실 이용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감을 확인하고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이야기가 오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남은 음식에 집중해야 할 때였으니까요.



그렇다면,

그날 저랑 민호랑 밥을 더 빨리 먹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