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는 워킹맘이 부럽다.
안녕. 동생.
오늘도 회사 출근하느라 바빴지?
나도 애 등원시키느라 정신없었네.
이제야 아이가 초등학교 가니
뭐든 스스로 잘하고
확실히 아기 때보다
손이 덜 가니 살만하더라.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니?
아이 피아노 선생님이 집에
오실 때가 다 되어가는데 애가 안 온다!!
어쩌면 좋니?
이 추운데 슬리퍼만 신고 뛰어나가서
동네를 다 뒤지고 돌아다녔어.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아주 해맑게 놀고 있더라.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걸 누르고 또 눌러 겨우 표정관리 성공했어.
밖이잖아. 다른 엄마들이 보고 있다고.
그래서 또 몇 달간 아이 하교 시간
정문 빼꼼이 신세였어.
초등학교 1학년 1시 땡 애델릴라
여유 있을 것 같지만
잠깐 집안일하고 돌아보면
시간이 날아가 있더라.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하는 말이
나는 학교 가고 아빠는 회사 가는데
엄마는 집에서 쉬어서 좋겠데...
아이가 온 뒤로 자기까지
아니 자고 나서도 8시간 이상 만근인데
나는 쉬는 사람처럼 보이고
엄마 일은 쉬워 보이나 봐.
가족의 상담사, 운전기사, 요리사, 집사,
비서, 학습지도사, 간병인, 스타일리스트,
친구 등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이것보다 더 다양한데 말이지.
거기다 이벤트로는 어린이날, 추석, 설,
최소 6인 가족 생일, 크리스마스, 방학,
졸업식/입학식, 지인 경조사 등
쳐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어.
겁먹진 마. 사람은 닥치면 다해.
즐겁게 하는 노하우가 있으니 걱정 마.
남편도 세상 사람들도 가정주부가
편하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마음이 참 복잡하다.
난 워킹맘이 부럽다.
워킹맘은 배부른 소리라며
나를 부러워하겠지만...
전업주부의 노동은 경력으로도
돈으로도 환산되지 않는 것 같아.
모두의 고민과 고난은
자기가 느끼는 고통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
이런 고민 중에 아이가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어.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면서 조르는데
마음이 심히 심란하다.
아들은 심지어 생명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거니 그저 생각만이라도,
마음만이라도 바꿔 달라고 눈물로
사정하는데 아주 그냥 대 환장 파티야.
둘째라니 말도 안 되지.
절대로 더 이상은 없어.
애 키우기 얼마나 힘든데!
지금껏 고생했는데
난 좀 쉬면 안 되는 인간인가?
나만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식구들이 있으면 딱히 눈치 보여서
제대로 쉬지도 못해.
남편이 재택근무 할 때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미뤄둔 서랍장 정리나
구석 먼지 청소 등으로
바쁜 척을 한 적도 있었어.
단 몇 시간의 외출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들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라
딱히 제대로 놀지도 못했어.
AI와 로봇이 발달하면서 집안일은 점점
자동화되어 가는 게 좋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
전업주부인 나는 잉여 같은 느낌이 너무 싫고 비참할 때가 있거든.
앞으로의 4차 산업 혁명 시대 AI와 로봇이
주부의 일만이 아니라 많은 일을
자동화될 텐데 나는 도대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이미 경력 단절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많은 부업들이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어.
캐셔, 경리, 청소, 요리, 가사도우미, 영업, 서빙, 학원 선생 등등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많이 없어졌다고 들었어.
내가 만약 둘째를 낳게 된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딸이라면
내 딸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내 딸은 미래에 엄마가 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자신이 없어.
내가 만들어 내기도 하고,
주어지기도 했던 수많은 편견, 문화,
환경 등 여러 장벽이 엄마가 된 뒤
다시 꿈을 꾸는 것을 주저하게 했었어.
그리고 엄마의 꿈은 회사에 다녀야만
혹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것으로만
한정 짓고 있는 내 생각이 과연 맞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못 찾겠는데
같이 고민해 줄 사람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