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채소

[달래에세이8] 슬기로운 채소생활이 되기까지

by 달래

가끔 들르는 편의점에서 아이들이 뿌셔뿌셔를 고르거나, "오늘 먹고 싶은 건 뭐야?"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떡볶이요!" 라고 할 때면, 여느 엄마들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떡볶이니? 그렇게 자극적인 걸..." 하고 결국 잔소리를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엄마에 그 자식이란 말이 딱 맞나 보다… 어릴 적 나 또한 떡볶이를 주식으로 삼았다. 하교길에 매일같이 제 집처럼 드나들던 분식집에서의 떡볶이 한 그릇은 나의 정체성이자 영혼이었다. 이런 호기로운 나의 위장생활은 학창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나는 밤 9-10시에 일을 마치고 동네 망원시장의 떡볶이집을 꼭 들렀다.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뜨끈한 빨간 음식은 허기진 내 영혼을 채워주었고, 나는 그렇게 잠들곤 했다.

이 기가 막힌 위장생활이 여기서 끝났을까? 천만의 말씀. 먹을 수만 있다면 이 잔소리 폭탄을 부르는 위장생활은 멈출 수가 없었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도 먼 곳을 오가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 시간을 내지 못해, 차 안에서 김밥과 아이스라떼로 끼니를 오랫동안 때우기도 했다.


이쯤 써보고 나니 내가 왜 염증이 있는 위를 부여잡고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뒤늦은 반성…) 10-20대는 쇠도 씹어먹을 나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30대에 들어설 때까지도 지극히 본능에 따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대 중반에 위가 적색신호를 보냈다. 나는 3개월간 죽만 소화할 수 있었고, 1년 동안은 고기와 밀가루를 먹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조금만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체하기 일쑤였다. 어떤 치료법도 효과가 없어서 한의원을 세 번은 다녀와야만 조금씩 소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극히 예민해진 위장을 부여잡고 지금도 항상 조심조심 살고 있다. 이렇게 지낸 지 어언 4년이 되어가니 조금씩 나의 위장생활도 정신을 차리고 주방살림도 건강해졌다.


첫째가 저학년 때 소아고혈압 진단을 받으면서 채소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내가 위염 진단을 받기 3개월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채소를 우리 식단의 왕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채소에 눈을 돌리자 자연스럽게 주변 마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함께 커졌다. 교회 권사님들과 엄마들이 채소값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이유를 이제는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

과일도 그렇지만 채소조차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요즘의 물가상승이 안타깝다. 얼마 전에는 개당 3,000원이나 하는 오이를 떨리는 손으로 구매했는데, 집에 와서 썰어보니 시들어 있어 더욱 속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주에 사는 복이 있다. 제주 읍면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농협 하나로마트를 이용하는데, 농협 하나로가 운영하는 '로컬푸드'가 가까이 있어 자주 들르곤 한다. '로컬푸드'는 제주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곳이다. 농부들이 직접 경작한 농산물을 '로컬푸드' 판매대에 진열하면, 우리는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신선하고 안전한 채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로컬푸드'를 구경하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같은 양파라도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고, 늙은 호박이 나오는 계절이면 다채로운 호박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싱싱한데 가격마저 착하다. 이렇게 가성비 좋은 '로컬푸드' 덕분에 나의 채소 살림살이는 슬기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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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하나로 '로컬푸드'


이 순결한 채소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은 사실 가장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알록달록한 친구들이 냉장고에 자리 잡고, 다시 요리로 태어나 사라지는 일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주방살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잘 알 것이다. 혼자 살 때는 채소들이 외롭게 썩어가던 야채칸이 지금은 위풍당당해졌다. 다섯 식구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결한 채소들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났다.


그래서 이 채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당근은 라페가 되고, 샐러드가 되고, 에어프라이어로 구워지고, 때로는 그냥 날것 그대로의 당근이 되기도 했다. 양배추는 마늘과 함께 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샐러드의 주인공이 되고, 다양한 요리의 조연이 되고, 새로운 겉절이로 변신하기도 했다. 무는 무생채, 요리의 부재료, 무피클 등으로 알뜰하게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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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채소생활


이런 다채로운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레시피와 동시다발적인 멀티태스킹, 그리고 늘어난 설거지를 감당할 체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채소 생활은 나의 사고방식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쉽고 편한 요리에만 기대어 살던 시절, 그것이 위장 건강에 가장 해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면에 시작부터 끝까지 만만치 않았던 채소 생활은 나를 단련시켰고, 결국 순결하게 만들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어려운 일은 결국은 나를 일으킨다.


덤으로 얻은 것은 채소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세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첫째는 여전히 채소부터 먹어치우고 메인 요리를 즐기지만, 채소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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