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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 Mar 31. 2021

[달래에세이 5] 아프고 나서 달라진것들





그런 세상을 보게 된 자들의 운명일까






지금으로부터 7개월 전, 코로나 2차 대유행의 서막이 열리던 뜨거운 여름. 

신흥리 바다에서의 물놀이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바다의 기억일 것이다. 그 해의 마지막 바다였고, 그때까지도 제주 도민 사이의 유행이 없을 때라 바다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도 코로나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은 채 마스크는 쓰는 시늉만 하며 마음껏 여름을 즐겼다.  그때 마파의 지인이 아이스크림(설레임)을 들고 오셔서 아이들과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모래놀이를 하며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햇볕을 마음껏 흡수했다. 


그 일이 화근이었다. 그 아이스크림은 내 안에 천천히 부풀어 오르던 검고 빨간 풍선의 바늘이 되어 주었다. 

그날 밤 첫째 아이와 나는 열이 펄펄 끓어올랐고, 코로나 2차 유행이 시작되던 시기라 결국 나는 코로나 검사까지 받게 되었다. 코로나 검사 자체가 공포이던 시절이라 검사 및 결과를 기다리며 이틀 동안 지옥의 밤을 보냈고,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 첫째 아이는 장염이었고 3-4일 만에 컨디션을 회복했다. 문제는 나의 컨디션이었다. 



원래도 위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했고 체를 자주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체한 것이 꽉 막힌 채로 3주 동안 내려가지 않았고, 동네 한의원을 열심히 다녀 침을 맞으면서 나아지나 했지만 그것도 잠시, 죽 말고는 아무것도 소화하지 못했고 두 달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열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염증 질환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온몸 곳곳에서 적신호가 드러났다. 


숙소 관리에 영어선생님, 아이들 육아까지 잠시의 부재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친정엄마와 남편이 나의 몫을 짊어지며 고생해야 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 내 몸을 너무 과신했다.쉼이 필요했다. 

이때의 무력감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잡아먹던 이때의 불안과 우울감을 생각하면 '죽음'이라는 무게와 색깔이 이런 것일까. 하고 감히 가늠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심하게 아프고 나면 병원에 누워있는 많은 이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가깝게는 매일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는 친정엄마, 사고로 한쪽 발을 수술해 늘 걸을 때마다 불편하신 친정 아빠.. 무심하던 내가 그들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암이나 큰 병으로 인해 그 무거운 무게를 감내하느라 수많은 슬픔을 읽어내고 소화해내는 그들의 하루하루가 가늠이 안되어 문득문득 너무 슬퍼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프고 힘겨운 사람들을 돌보는 손길에 눈이 갔다. 이 동네 조천에서도 종종 보이는 할머니(60대)가 더 연로하신 할머니(90대)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시키는 장면이라든지, 여러 챌린지들을 통해 수고하는 이들에게 보내지는 선물 꾸러미들이라든지, 요양원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시작됐을 때 자신들도 나이가 많고 힘들 텐데 할머니들을 포기하지 않고 돌본 요양보호사들이라든지...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되면서 나의 안과 밖의 시선(생각)이 생각보다 더 단편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가...

더 많고 깊은 세상을 보게 된 것 같아 기쁘다가도, 또 그만큼의 시름이 감당이 안 되어 금세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얼마간의 햇살을, 곧 딱딱하고 가녀린 벚나무의 가지에 핑크빛 새봄이 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설레고 따스한 봄이-그 회복의 샘이 나에게도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 아픔과 분노를 겪은 화수가 

"그 점은 나도 싫은데 외부의 충격에 영향받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만 내가 그날 이후로 곱씹고 있는 건 내 불행, 내 상처가 아니야. 스스로가 가엽고 불쌍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보다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는." 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프고 나서는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서 있게 되었다. 화수의 말처럼 '내가 가엽고 불행하다고 생각되어서' 마냥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기쁨에 가만히 머물러 있기도 조금 힘들어졌다. 



설명하기 힘든 그런 세상을 보게 된 자들의 운명일까. 세상에 다가서는 방법을 이제서야 알게 된 기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층층이 아름답고, 눈부시고, 뜨겁고, 슬픈 것 같다. 






(7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염증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케이크와 쿠키는 가끔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척추측만증과 싸울 차례) 





봄날의 어느날 


#반려병 #에세이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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