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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Oct 15. 2022

도로 위의 무례와 싸운다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운전하지 않는 날

열흘 전쯤 출근길에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교차로에 멈추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차가 와서 내 차를 쿵 박았다. 좌회전 신호로 바뀌고도 내 앞차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아 나는 크랙션을 울릴 뿐 꼼짝할 수 없었고, 차량 흐름은 무시한 채 신호등만 보고 예측 주행하던 차가 와서 내 차를 받은 것. 순식간에 벌어진 일, 그리고 운전하며 처음 겪은 일에 놀라 손이 벌벌 떨렸다. 다행히 통원 치료가 가능할 정도의 사고였지만, 목과 허리 쪽 건강이 안 좋아져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다.


나는 순천에서 소도시 생활을 시작하며 운전에 처음 발을 들였다. 면허를 따기 전엔 두렵기만 했던 운전은 예상보다 즐거웠다. 진작 딸걸, 아쉬움이 들 만큼. 아이들을 재우고 홀로 밤 드라이브를 나왔던 날, 창문 너머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따라 부르며,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유 그 자체였다. 앞으로도 나는 원하는 때에 언제고 원하는 곳으로, 심지어 무거운 짐까지 싣고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차를 운전할 수 능력이 삶의 반경을 얼마나 넓히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에 대해 곱씹었다. 운전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로 위에서 자주 분노한다. 자주 화가 나 있다. 운전이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도로 위로 나서자마자 알아차릴 것이다. 차와 차가 마주하면 반드시 의사소통해야 한다. 조금 더 가까워지기 전에 의사를 표현하는 게 기본이다. 그것이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로에는 커뮤니케이션에 둔감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지는 암묵적인 규칙, 약자를 보호하거나 양보하는 미덕 같은 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방향등을 켜 자신의 기본적인 의사를 밝힘으로써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소홀한 사람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리라 착각하는 사람들이자, 아무 사고도 없을 거라 쉽게 방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기다리고 헤아리는 데 능한 다른 이들마저 지치게 만든다.


어린이, 학생들, 노인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망설이고 있으면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 멈추며 건너가라는 손짓을 하며 그들을 먼저 보낸다. 그러면 뒤에서 크랙션을 울리거나 갑자기 옆길로 빠져나와 내 앞으로 먼저 가버리는 차들이 있다. 그러면 교통약자들은  결국 내게 양보를 받고도 길을 건너지 못하고 다시 걸음을 멈추고 만다. 뒤차의 운전자는 아마 내가 초보운전 표시를 붙인 운전자라 상황 파악을 잘 못했거나 엉뚱한 이유로 속도를 줄였다고 속단하고 나를 앞질렀을 것이다.

사실 초보운전 표시를 붙인 경차를 대놓고 위협하는 차들은 꽤 많은데, (소도시에서 초보운전 경차 운전자는 높은 확률로 여성이고 아기 엄마다.) 남들 사정이나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일에 무심한 운전자가 얼마나 많은지, 결국 나는 통계까지 낼 만큼 불친절한 사람들이 타는 몇 가지 차종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이르렀다!




도로 위에서 자꾸 무례한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운전하는 일이 나를 지치게 한다. 가끔은 화가 나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욕을 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호기심에 처음 "씨발"이라고 소리 내어 봤는데, 욕이란 것이 나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 뒤로 정말 단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다.)

거리 위의 교통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규정 속도를 따르는 차를 무조건 앞지르고, 끼어들든 우회전을 하든 좌회전을 하든 절대 깜박이를 켜지 않는 무례하고 불통인 사람들, 좁은 길에서 차끼리 마주치면 양보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먼저 가야 하는 이들, 그 상황에서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최악의 하루를 보내라고 저주하고야 만다. 


그렇게 무례한 이들을 욕하고 저주하고 나서야 마음은 좀 누그러진다.내 나름의 투쟁이고 싸움이다. 사실 결국 승자 없는 싸움이지만, 나는 날마다 도로 위에서 싸우고 또 싸우고 있는 셈이다.

 분노와 불안은 나를 집어삼킬 것인가? 가끔은 두려워져 하루 정도 '운전하지 않는 날' 정하고  안의 평화와 부드러움을 길어올린다. 운전하지 않는 날 되찾은 나는 분노를 삭히고 다시 차에 몸을 싣는다. 무법자가 가득한 도로 위를 향해 간다. 


사고가 처음이라 내 딴엔 경미한 사고라 생각했는데, 차 상태를 본 사람들은 모두 꽤나 빠른 속도로 받힌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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