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남 주는 독서 노트 #4
대학원에서 텀페이퍼 프로포절이나 매 세미나 때 다룰 논문들에 대한 리뷰 페이퍼를 쓰면서 교수님들께 line-by-line (줄바줄...) 으로 글의 논리성과 내용을 까이며 배워왔다. 그 과정에서 비록 멘탈은 바삭바삭 깨졌을지언정 덕분에 무슨 내용을 접하게 되든 일단 의심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다니는 부서로 발령받고 나서는 BI로 추출되는 데이터 하나하나가 당최 믿을 수가 없어서, 안그래도 신입이라 업무가 느린데 더 느려서 재촉을 받기도 했다.
사실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지만, 학부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논리적이거나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나이대 (라고 30대 풋내기가 말합니다.) 즈음엔 ‘이상’에 쉽게 사로잡히는 나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나 책을 접할 때, 혹은 어떤 연사가 와서 특강이나 간증을 할 때면 ‘오오오...’ 하면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경제적 성공이나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이 다시 특정 문제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경우들도 종종 보게 된다.
[멀티팩터]는 [골목의 전쟁]이라는 책을 앞서 썼던 작가이자 블로거인데,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어 블로그 이웃으로 추가해놓고 글을 구독하게 되었다. 저자는 비즈니스 성공신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평범, 열정, 노력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며, 그 뒷단에 있는 또 다른 성공요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요인들을 보지 못한 채 피상적인 수준으로 이루어진 성공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는 배울 수 있는 점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확인한 상태에서는, 원인을 추론하면서 잘못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원인보다는 그저 결과에 걸맞는 가장 그럴싸한 이유를 찾는 것일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분석을 통해서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30페이지)
성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느 한 요소를 애써 축소할 것이 아니라 성공 요소의 다양성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76페이지)
이어 공차, 프릳츠, 마켓컬리, 무신사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성공 사례들 속에 숨겨져 있는 Key Success Factor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며 무엇이 과연 진짜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책에 담겨 있는 걸 요약하는 것에 불과하니 차처하고, 요컨대저자가 이야기하는 비즈니스에서의 성공 대원칙은 출발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필요한 경쟁자원을 확보한 가운데 총력전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례로 나온 기업들 모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창업자 또는 초기 창업 팀의 열정만 갈아넣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차별적인 경쟁자원과 그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적 요소가 적절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멀티팩터’들을 무시한채 단편적 분석에서 나온 독특해보이는 특정 개인적 요소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전쟁의 기본은 총력전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하여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나의 우위는 강조하고, 열위는 최소화하며, 상대방의 우위를 최소화하고 열위를 공략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계발과 성공 스토리들은 오로지 개인에 초점을 둠으로써, 우위를 강조하여 성공을 향해 총력전을 해도 모자를 판에 그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467페이지)
그렇다면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나 같은 개인에게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먼저 어떤 신화적인 성공, 멋져보이는 성공 사례를 만날 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번 더 의심해보며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이런 신화적인 성공이 아닌, 현실적인 성공이다. 엄청난 운이 개입되어 만들어진 예외적인 상황을 전부로 여기기보다, 나의 우위가 무엇인지, 그것을 가지고 총력전을 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노력이 성공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당장 그렇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마땅히 않다면, 경쟁자원을 확보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시장의 지형을 뒤바꾸고 있는 변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봄으로써 역량을 키우는 것,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네트워크를 다져두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손실은 최소화하며,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명확한 실적을 기록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와 반대되는 실패, 즉, 회복이 힘들 정도로 자본을 깎아먹거나, 인적 네트워크가 축소되거나, 특정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485p)
사실 후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해서는 안될 실패를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서 씁쓸했다.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논문까지 썼지만, 현 시점에선 그 분야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도 희미해졌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성 또한 잃어버렸다. 휴직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포지션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물론 나는 신앙인이기에 현재 걷고 있는 전혀 다른 두 길이 어떻게든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수렴할 것이라는 것은 믿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차선의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서 부던히 자원을 쌓아가야 할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의지와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정신승리의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그런 신화를 멀리하고자 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153페이지)
성공하는 절대적인 방법이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50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