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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치하늬커 Jan 29. 2023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과거가 붙잡는 내 마음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11월


4년 묵은 숙원이 풀렸다. 월드컵 16강 얘기가 아니라, 내 자궁벽에 드디어 붙은 세포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21년에 이어서 2022년 가을, 세 번째 시험관을 했다. 남아 있던 냉동 배아 2개를 이식했는데 그중 하나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식 후 약 4주가 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하루하루가 걱정과 불안 속이었다. 겨우겨우 아기집까진 확인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세포들이 끝까지 버텨줄까? 엄마가 된 모습을 마구마구 상상하다가도 다시 자제하길,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길 연속이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이런 악몽을 꾸기도 했다. 병원에 죽은 태아들이 죽 늘어져있는. 끔찍했다.



과거가 붙잡는 내 마음


아무리 좋은 걸 생각하려고 해도 과거의 경험이 나를 붙들었다. 임신 테스트기에 이렇게 진한 두 줄이 나온 적도 처음이고, 가슴이 몇 주 째 계속 빵빵한 것도 처음이고, 아랫배가 계속 알싸하고 쑤시는 것도 처음이고, 울렁거려서 뭘 먹기가 싫은 것도 처음인데 말이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2년 전 장면이 떠오른다. 심장 소리를 확인하러 간 날 들은 유산 가능성. 아기집이 주 수에 비해 작아서 이럴 경우 자연적으로 유산될 확률이 높다고 한 의사의 말. 결국 그렇게 됐다. 그 경험 때문에 이제는 이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만 하고 있다. 심장 소리를 들을 때까지. 고작 5mm인 이 생명이 잘 크고 있다는 걸 재차 확인받을 때까지 마음껏 기뻐할 수 없다. 


그 관문을 넘으면 괜찮을까? 막상 임신이 됐다고 생각하니 이 새로운 생명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다. 아직 내 눈으로 본 적도 없는 ‘내 아이’라는 존재. 건강히 잘 태어날 수 있을까, 건강히 잘 자랄 수 있을까. 온갖 위험과 죽음에 대한 공포,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하필 이태원 참사를 겪고 난 뒤다. 벌써부터 이러니, 진짜 엄마가 되면 어떨지. 휴. 아찔하기도 하다.



기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 모든 과정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남편과 떨어져 혼자 겪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배아를 이식만 할 때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 없다. 오로지 내 몸이 감내해야 할 일이다. 애초에 한국에 와서 혼자 하다가 잘 안되면 바로 LA로 돌아가고, 잘 되면 남편 에리기가 한국으로 오기로 했다. 휴가를 낼 수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한국에 올 수 있는 제일 빠른 날이 다행히 심장 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6주 차였다. 


괜히 더 그립던 에리기를 만나러 공항에 가려는데 “나도 그때 마음껏 축하하고 누리지 못한 게 후회되더라고”라는 친구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시험관 N차, 갖은 고생을 하며 생명을 낳은 친구다. 일단 그냥 걱정 근심 불안 다 떨치고 지금 이 순간을 축하하자는 다짐을 했다. 혹시라도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서 내 마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지금의 감정을 충실히 느끼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두 달 반 만에 남편을 만나는 날,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와 함께 셋이 처음 조우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로 했다.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을 챙기고, ‘찰떡이 아빠를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종이에 써갔다. (태명도 그냥 내 맘대로 ‘찰떡이’로 지었다. 자궁벽에 찰떡 붙어있으라고.)



망할 놈의 심장 소리


에리기가 도착한 바로 그다음 날 오전에 진료 예약을 잡아놨다. 망할 놈의 그 심장 소리를 확인하러. 아침에 일어나니 둘 다 잠도 뒤척인 채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병원에 가는 내내 “괜찮아. 이번엔 느낌이 좋아”라는 말만 서로에게 열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심호흡을 하며 진료 의자에 앉았다. 아기집은 있지만 그 안에 태아가 없는 건 아닐까, 크기가 작아서 이번에도 심장이 뛰지 않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집을 때 즈음 “자, 한번 들어볼까요?” “쿵쾅 쿵쾅 쿵쾅 쿵쾅” 하는 소리가 났다. 정말 애써 참고 참고 참았는데도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내 마스크 밖으로 나왔고, 질 초음파를 하는 그 방에 의사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에리기를 껴안고 오열을 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병원 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발을 동동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들었다! 심장소리!!!!!! 


당장은 기뻤으나 이제 한고비 넘긴 거니 너무 호들갑 떨지 말자고 서로를 진정시켰다. 심장 소리를 한 번 들은 걸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1주 뒤, 또 1주 뒤. 매주 가서 세 번째 심장 소리를 듣고 2배씩 성장하고 있는 찰떡이를 보고 나서야 서서히 임신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에리기와 나는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고 기쁨의 감정을 맞이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비밀이 된 초기 임신 소식


이미 시험관을 한다고 워낙 주변에 기도 부탁을 많이 해놔서 가족들과 친구들한테 매주 상황을 업데이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을 직접 겪지 않은 친구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기까지 이렇게 수많은 허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 했다. 그리고 에리기와 내가 현재 어떤 감정의 격변을 겪고 있는지 역시 말하지 않으면 감히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왜 다들 가장 유산 비율이 높은 초기에 임신 소식을 알리지 않는지 이해가 가다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모를 유산에 임신이 확실해질때까지 쉬쉬하지 않는가. 그게 이유라면, 생명의 시작을 축하하기 바쁘지, 사라진 생명을 제대로 애도하는 데 우리는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슬픈 소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어떻게 애도하는지 계속 모르게 되는 거 아닐까. 


어느 날 에리기는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비밀로 하고 있다가 “아이가 태어났어요!”라고 최종 결과인 좋은 소식만 올리면 이상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이면에 우리가 겪어 온 감정과 상황이 너무 다채롭기 때문에. 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을 하더니 SNS에 지금 우리 상황-시험관 후 지금까지는 긍정적이지만 마음을 졸이게 되는 난임부부의 임신 과정-을 올렸다. 그랬더니 지인들은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렇게 용기 내서 공유해 줘서 고맙다고. 큰 힘이 된다고. 수많은 유산과 오랜기간 난임으로 고생한 부부들의 성공의 스토리를 들으며 오히려 우리가 용기를 또 한 번 받게 됐다.


나도 가지레터에 속마음을 쓸 용기를 내게 됐다.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주변에 난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에. 물론 우리의 소식이 희망이 될 순 있지만, 내가 그 상황에 있었을 때는 ‘남들은 결국 아이를 갖게 되는데 여전히 나만 안되네?’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진심으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상대의 감정을 살피는 것, 진심으로 아파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 그걸 배워서 참 기쁘다.


사진 설명: 이렇게 임신 시기가 겹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니, 기념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추진력 좋은 동생은, "언니, 내일 내가 서울로 갈게! 지금 아니면 찍을 시간 없어!"라고 하더니 셀프 스튜디오 예약 시간을 보내왔다. 이 사진을 찍은 3일 뒤 양수가 터졌다. 예정일 보다 일주일 먼저 세상에 나온 시온이. 뱃속에 있을 때의 너와 찰떡이를 기억할 수 있어서 소중해! 



첫 조카가 태어났어요!


여동생이 11월 마지막 주에 첫 조카를 낳았다. 그렇다. 내가 이 모든 감정을 겪는 동안 여동생은 한 번에 자연임신이 됐다. 하필 가장 힘들었던 3월 즈음, 여동생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건 전화 통화에 돌아오는 대답이 임신 소식이었다. 동생은 동생 나름대로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덜컥 임신이 된 터라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걸 언니인 내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했었다. 그런 내 마음이 못나 보였고 미안했다.


배가 부른 친구도, 신생아가 있는 친구도 피해오던 내가 동생 덕분에 그래도 직면하게 됐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니까. 배가 불러오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보고 기억해 주고 싶었고, (가능만 하다면)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질투의 마음을 지나, 축하의 마음을 지나, 내가 하지 못하는 경험을 너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는 마음까지 갔다. 


그러다가 하필 이때 시도한 시험관이 성공한거다. 사실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첫 조카 시온이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무지 신비롭고 기쁘다가도 무지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다른 감정 없이, 오로지 축하와 감사의 마음으로 내 동생과 시온이를 볼 수 있어서 기쁘다.


혹 나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족의 대경사를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찰떡아! 이 시기에 와줘서 고마워!!! 끝까지 잘 붙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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