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한 연결과 관계 그리고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4편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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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신뢰'라는 키워드는 내가 써놓은 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일터든 어디서든 요즘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신뢰 자본'을 잘 쌓아두었냐는 거다. 신뢰를 자본으로 표하는 게 조금은 생소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신뢰도 자본이 맞는 것 같다. 있고 없고에 따라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는가'에서 '아묻따'가 가능해지기도 하고, '뭘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아뇨, 나는 당신을 반대해요.' 같은 신용도 하락으로 거절당하기도 일쑤니까. 그래서 나는 신뢰 자본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을 때, 꽤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신뢰자본 덕분에 지난 3년 전에 했던 일을 또 맡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믿는다는 힘은 이렇게나 큰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분명하진 않지만 확실한 건 행복하다 말한다. 글쎄, 행복을 주는 요소들이 꽤 많을 텐데, 나는 왜 행복을 느낄까 하고 거슬러 올라가보니 일단 그 안에 신뢰가 있고, 그 신뢰는 어디서부터 나오나 했을 때 공적이든 사적이든 거짓 없는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기쁨에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줄 줄 알고, 누군가의 슬픔과 힘듦에 함께 울어주고 응원군이 되어주는.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려고 길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이걸 한 문장으로 종합해보니 이렇게 나온다.
"나는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사람이어야 행복의 충만함을 느낀다."
아, 그래서 카메라의 뒤에 있는 일을 택했던 거구나. 조금은 이해가 갔다. 물론, 지금도 나는 무대 앞이 아닌 백스테이지를 맴도는 존재이긴 하다. 나는 사람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힘이 난다. 사람이 좋다.
개발자가 아니라 비개발자인, 기획자이긴 하지만 PM 같은 제품, 프로덕트를 만드는 기획자가 아닌 콘텐츠, 스토리텔링, 관계를 만드는 나는 늘 불안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지내왔다. 왜 나는 그런 상황 속에 놓여야 했을까, 놓여야만 하는 게 맞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답은 바뀌지 않았다. 불안하더라도 나는 내가 잘하는 걸 해야 재미와 흥미를 느끼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IT와 테크가 중심이 되고 이를 강조하는 세상이라 하지만 내 세상은 '인간'이란 존재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이라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인간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편리성'보다는 인간의 '관계'에 좀 더 충실하고 싶다는 것을.
나라는 제너럴리스트는 생각보다 스페셜한 구석을 지니고 있었구나. 그걸 다 글로 적어두고도 찾지를 못했구나. 정말 지척이었는데. 아마 나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눈여겨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게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11월 중순에 퇴사하고 난 후 연말까지, 회사도 직군도 직무도 다양한 분들을 만나 삶과 커리어, 일상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명확해지긴 했지만, 막연하게 생각은 했으나 뚜렷하지 않았던 내 커리어의 정체성과 성장의 방향을 뾰족하게 잡고 다듬을 수 있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면면을 다른 분들이 얘기해주었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그래서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뜻하지 않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 올해를 넘기기 전에, 14년의 커리어를 뒤돌아보고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어서 안심했다. 열쇠를 찾고 난 후 지금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지만 아무렴. 전처럼 불안하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건 없다. 걱정이 되기야 하겠지만 그것도 쓸데없는 걱정일 가능성이 크다.
두루두루 다 할 줄 알아서 어쩔 줄 몰랐던 제너럴리스트는 신뢰와 관계라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만나 스페셜하게 거듭나보려고 한다. 그게 내 2023년의 계획이고, 앞으로 나를 지탱할 기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