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월 9일의 기록을 펼쳐둡니다.
취미로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가끔 타로점을 봐주곤 하는데, 좋은 내용을 담은 카드를 뽑으면 참 좋겠지만 어떤 카드를 뽑을 때마다 괜히 내 마음이 다 안타까워지는 카드가 있다. 카드엔 창가 좁은 선반에 겨우 놓인 컵 9개와 이를 바라보는 한 귀족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컵을 찾고는 모아두려고 계속 사들였더니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었다. 카드에서 말하는 컵은 관념, 마음을 뜻하는데 아하. 그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을 계속해서 쏟는 것이었구나. 그러니까, 마음을 낭비하고 있는 거구나.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관계에 마음을 쏟는 일들이 많다. 내가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걸어간다. 걸음의 종착지에 내가 예상한 그림이 펼쳐진다면 참 마음이 놓일 테지만, 이런 건 항상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간다. 이럴 때마다 힘든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겪고 난 후 내 몸을 둘러보면 어디 하나 성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가 애를 쓰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늘 던져왔다. 온몸을 다해, 온마음을 다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았던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파악하고는 앞으로 그만 낭비하기로 했다. 그 방안 중 하나로 모든 것에서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다. 거리를 두면 오히려 더 멀어지지 않을까 불안감도 크고 걱정됐는데, 이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수많은 버스가 오가는 버스정류장처럼, 수년이 지나도 여전한 가게들처럼, 묵묵히 조용히 싹을 틔워 자라는 나무들처럼. 늘 곁에 있지만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필요할 때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존재, 기억이 문득 떠올랐을 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존재. 오히려 거리를 둠으로써 나의 낭비벽은 줄었고, 사람들도 사회에서도 나를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아무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