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를 지나고 이야기하는 요즘의 일상
나이가 들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더니, 전혀 틀린 말은 아녔다. 지금은 8월 하고도 중순이 지났고, 2023년은 절반이 채 남지 않았다. 2023년의 첫 시작보다 끄트머리가 가까운 시점에 다다르고 나서야 드디어 털어놓는 (하지만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는) 나의 근황. 왜 안 쓰냐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또 한 해를 넘길 뻔했다는 건 안 비밀.
일단,
안 그래도 십잡스인데 이제 이십잡스 되는 거 아니냐, 직무 수집 어디까지 가능?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엔 가슴 한 구석이 조금 뻐근해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살아온 햇수와 여러 가지를 조목조목 뜯어보니 '대체 어디까지 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단어야 생각이라고 적었지만 걱정에 가까운 그런 생각. 하지만,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사람이 나라고, 그런대로 또 적응하고 잘 헤쳐나가고 분명 나만의 길을 걷고 있을 거란 걸 알아서일까.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우려의 아지랑이는 그대로 증발되어 사라졌고, 우려가 무색해질 정도로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 것도 만족스럽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충족 요건을 충실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구성작가 시절, 문장을 쓰고 단어를 선택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나 떠오르는 단상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를 수도 없이 고쳐나갔다. 레퍼런스가 있다 한들 그것만으론 내가 구축한 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빨간 펜으로 연신 긋고 쓰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역시 반복 학습이 중요해.
그래서 덕분에, 나만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수월하게 표현 가능한 것들도 있지만 반대로 설명이 어려운, 추상적이거나 관념이 가득한 것들도 있으니, 그것들이 가진 느낌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직관적인 글쓰기' 말이다. 들만한 예시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는데, 당장 외부에 공개돼선 안 되는 것들이 대다수라 기록을 할 수 없다는 점 우선 양해 부탁드리며... 아무튼,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상황이, 돌아가는 판이 꽤 즐겁고 재밌다.
서울의 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구성 작가의 업무도 겸하고 있다. 그리고 UX Writing도 조금조금씩 하고 있... 무슨 문장 다루는 일은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또 직업을 바꾸면 어떻겠냐 물었다. 가만 두지 않겠다.)
카피라이터가 되었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너도 이제 저런 한 줄 문장 쓰는 거야?"였다. 문장 쓰는 거야 맞지, 맞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문장을 쓰는 게 아니고 문장을 '그리는 게' 좀 더 맞지 않을까.
요즘은 BX(Brand eXperience)라고 해서, 고객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이를 각인시키는 경험을 선사하는 게 트렌드니까, 여기에 빗대어 본다면 카피라이팅은 브랜드 경험을 위해 명사, 조사, 형용사, 부사, 동사 등등을 활용한 단어, 글자에 브랜드의 이미지를 녹여내어 그리는 거라고 감히 말해본다.
문장 한 줄을 그려내면 이 문장이 맞다는 걸 뒷받침해 줄 시놉시스와 스토리보드도 함께 짜야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많은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라 갈 길이 멀다. 헤쳐나가야 할 것들도 많고. 그런데 그런 어려움마저도 지금은 마냥 즐겁고 재밌다. 여담인데, 다른 방송구성작가들에 비해 자막 쓰는 걸 굉장히 좋아했었다. 또,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는지 내가 써야 할 자막 분량도 점점 많아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일이 즐겁고 재밌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직무 전환과 더불어 이직을 마친 후, 링크드인에 이런 글을 올렸었더랬다.
지금이야 당장 신나고 들뜬 마음에 카피라이터 좋아요! 를 외치고 있지만,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그래도 꽤 깊고 진하게, 나의 농도를 만들어 두지 않을까. 짙어진 나의 농도를 또 어떻게 풀어내려고 할까. 앞으로의 내가 무척이나 기대되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