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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로진 Dec 29. 2020

나 죽으면 재혼해

오늘도 다행히 부부입니다

“나 죽으면...재혼 해.”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그녀가 재혼 따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아니, 난 이기적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도 나를 따라 죽길 바란다. 안될까? 내 생각만 한다고? 아내가 죽으면? 난 따라 죽을 수도 있다. 당신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랴. (아내 앞에선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랬다면 어떻게 25년 동안 결혼을 유지했겠나?)     

얼마 전 선배 A가 암으로 사망해서 장례식에 갔다. 조문객이 뜸한 자정쯤 되니 A의 부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누이가 상가를 지켰다. 부인은 너무 피곤해서 근처 호텔에 방을 잡고 주무시러 갔단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A는 내게 친형제같은 존재였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 나 죽으면...장례식장에서 잘 거야, 호텔에서 잘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A 부인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돼.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어?’라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A 선배가 뭐 잘못했나 보지.

여자들이란. 아니 아내들이란!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그는 죽고 나서 그런 대접을 받을까? A씨에게 묻고 싶다. 

“형! 무슨 짓을 한 거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는 아내의 대답에 빈정이 상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빈정상하는 일이다. 빈정은 비어있는 정인데 그것이 상하니 없는 것이 더 망가지는 셈이다. 있지도 않은 정이 생생했다 상했다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억하심정으로 물었다.

“그럼, 당신도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 가까운 호텔 잡아서 편히 잘 거야?”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뭐?”

기가 막혔다. 이래서 죽은 놈만 억울하다는 거다. 남편 죽었는데 잠이 오냐? 하루 이틀 안 잔다고 죽냐? 어차피 죽으면 영원히 자는 걸. 그래, 자라 자!  코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자라고.     

-평소에 잘하셔. 안 그러면 나도 호텔에서 잘 거니까.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나가 버렸다. ‘너의 평소 행실을 생각해 보아라.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러니까 지금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내 사망을 걱정하면서 그 이후의 장례식 때 아내가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울지 특급호텔에서 편히 주무실지를 고려해서 행동을 똑바로 할지 말지 결정하란 말인가? 내가 죽고 나서야 아내가 특급호텔에서 (혼자)자든 말든 장례식장을 지키든 말든, 재혼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상관없어! 내가 죽었는데 특급호텔은 무엇이며 재혼은 또 무어냐.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살아서 아내에게 아무리 잘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만약 50대 중반인 내가 급사한다면, 여전히 30대처럼 보이는 아내는 수많은 남자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그녀와 난 두 살 차이) 요가로 단련된 그녀는 키 163cm에 몸무게 48kg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얼굴에는 잡티 하나 없고(몇 년 전에 다 제거함) 아직 새치도 거의 없으며(한 달에 한 번 염색함) 주름도 볼 수 없다.(6개월에 한 번씩 피부과에 감) 말투는 나긋하고 성격은 순종적이며 결혼 25년이 되도록 내 앞에서 여전히 방귀를 트지 않을 정도로 천상여자다. 이런 사람이 맘만 먹으면 할아버지들 다 죽는다.     

 지금도 호시탐탐 그녀 주위에 얼치기들이 얼쩡거리는데 내가 죽으면? 아름다운 미망인 아니 섹시한 과부인 그녀를 그들이 가만 놔 둘리 없다! 전화하고 만나자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 한잔을 곁들이겠지. 얼마 전, 아내는 업무차 중소기업 사장인 70대 노인을 만났는데 롤스로이스를 몰고 와서 재산 자랑을 하더란다. 미팅이 끝날 무렵 유부남인 그는 뻔뻔하게도 “친구와 애인 중간 정도 되는 사이로 지냅시다”라고 말했단다. “나 아직 안 죽었어요”라면서. 살았으니 실없는 농담도 하고 죽고 싶어 환장도 하는 거겠지. 이 말을 전하면서 아내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한다. “나도 아직 안 죽었어. 나가면 이렇게 남자들이 줄을 선다. 줄을 서.”(파스 냄새나는 노친네들이겠지.)     


쓰다 보니 또 팔불출 짓을 했다. 결국 제 마누라 이쁘다는 소리다. 25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A 부인은 그날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없어 혼자 아픔을 삭이기 위해 호텔 방을 잡았을 것이다. 평소 귀족 같은 품위를 유지했던 망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자세를 견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짝을 먼저 보내는 애통함을 가눌 길 없어 자정 무렵, 기어이 특급호텔 객실을 찾아 하늘이 무너지는 괴로움을 혼자 감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먼저 죽을 생각하지 말고, 같이 잘 살 생각이나 해.

그날 잠자리에서 아내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아, 그럼 그렇지. 역시 내 사람, 내 사랑이로구나.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뜨거워지려는 순간, 그녀는 덧붙인다.

-나 아직 못 해 본 거 많아. 나도 호강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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