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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로진 Jan 05. 2021

부부의 세계, 캐지 말 것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부부의 세계캐지 말 것     


제혁 “세상엔 두 종류의 남자가 있어. 바람피는 남자와 그걸 들키는 남자. 본능은 못 느끼거든.”

선우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냐.”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대사다. 이 드라마는 김희애라는 탁월한 배우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메데이아’까지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28.3%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소도시 가정의학과 전문의 선우(김희애)는 영화감독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인 태오(박해준)과 결혼, 아들 준영(전진서)과 함께 멋진 집에서 살고 있다. 돈, 명예, 가정 모든 면에서 남 부럽지 않게 잘 살던 그녀는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사실에 망연자실해진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두가 완벽하게 나를 속이는’ 상황의 외도다. 절친도 날 속이고 선배도 후배도 날 속인다. 선우는 이 충격 속에 분노하고 부정하고 자책하면서 결국 복수의 길을 택한다. 


“내 아들, 내 집, 내 인생 뭐든 놓치지 않을 거야. 이태오만 제거하면 되니까.”

과연 그럴까? ‘외도 당사자의 삭제’가 남은 가족의 행복으로 직결될까? 선우가 택한 복수 중 태오에게 가장 가혹한 건 ‘아이를 못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가 외도한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듯이. 그러나 이 방법은 자식이 미성년일 때나 가능하다. 성인이 되고 나면 외도한 아빠를 보든 말든 자식이 선택할 문제가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게 너무 모범적으로 보였던 선배가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중소기업 CEO로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 명망도 있었다. 선배는 솔직하고 친절한 성격의 남자였다. 언젠가 술을 마시면서 그에게 물었다.     

“형 결혼 몇 년 차야?”

-20년.

“형은 외도 한 번 안 했지?”

-...

“설마?”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나도 네 번 했다.     


충격이었다. 그 사람만은 일편단심 민들레인 줄 알았는데. 나도 남자지만 이래서 남자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거다. (어쩌려고 이러나?) 결혼 20년에 아내 모르는 외도가 네 번. 평균 5년에 한 번이란 건데...많은 것인가, 적은 것인가.(당신의 결혼 연차를 세는 중인가?)


외도는 절대적이다. 한 번도 많다. 그렇기에 절대 해선 안 되고, 해도 걸려선 안 되며 걸려도 인정해선 안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바람을 남자 혼자 피겠나? 선우의 말대로 ‘본능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므로’ 상대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은 미혼일 수도 기혼일 수도 있다. 세상엔 선우 같이 억울한 경우 못지않게 ‘오쟁이 진’ 남자들도 많다.      


원래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섬을 뜻한다. 섬은 열 말이 들어가는 가마니로 쌀 ‘한 섬, 두 섬’ 할 때의 그 섬이다. 뒤집어쓸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큰 바구니라고 보면 된다. ‘오쟁이 진다’는 말은 ‘자기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내지는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장면을 목격하다’는 뜻이다. 이한길의 [한국 민속 문학 사전]을 보면 이 말은 주로 전남과 경북 지역에서 채록된 설화에서 유래했다.           


어떤 남녀가 간통을 하다 남자가 “우리 둘만 재미 볼게 아니라 당신 남편이 보는 데서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깜찍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여자가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그런 방법이 있소?” 남자는 “나만 믿으라”며 내일 낮에 남편과 툇마루에 꼭 붙어 앉아있으라 했다. 

다음 날 남편과 여자가 툇마루에 앉아있는데 남자가 오쟁이를 지고 가다 이렇게 말했다. “어허, 대낮부터 정을 나누고 있소?” 남편이 역정을 내며 “무슨 소리냐?”고 하자 남자는 가까이 와서 “어이쿠 그게 아니었네. 이 오쟁이를 쓰고 보면 그리 보인다오.” 했다. 그러면서 남자는 여자의 남편에게 오쟁이를 씌워 주고 보라 했다. 그 틈에 두 남녀는 정을 통했다...는 이야기.(이게 가능해?)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도 훔쳐보기는 등장한다. 이 관음의 역사는 오래됐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첫머리에도 등장한다. 기원전 7세기 리디아(현재의 터키) 지역 사르디스 왕 칸다울레스는 자기 왕비 니시아가 너무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녀가 알몸일 때. 그럼 그냥 부부끼리 즐기고 말면 그만인 것을 칸다울레스는 자기의 경호원이자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이인 기게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


“기게스, 내 아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알죠.

“진짜 알아? 모를 거야.”

-압니다. 왕비님이 아름답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걸요.

“아냐. 니시아가 예쁘긴 한데...벗으면 더 예뻐.”

-...

“자네 한 번 보겠나?”     


충신이었던 기게스는 극구 거부한다. 그럼에도 칸다울레스는 기게스에게 희대의 관음을 지시한다.

“자네가 내 침실의 열린 문 뒤에 숨어 있으면 니시아가 들어와 그 앞의 의자에 옷을 하나하나 벗어 놓을 것이네. 그때 앞모습을 보게. 옷을 다 벗으면 돌아서서 침대로 올 것이야. 그럼 뒷모습을 보게. 아내가 나와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없는 사이, 자네는 침실을 몰래 빠져나가면 되는 거야.”

기게스는 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그대로 했다. 그런데 칸다울레스 왕이 놓친 게 하나 있다. 왕비 니시아는 생각만큼 남편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기대만큼 부부관계에 몰입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절정의 순간에도 기게스가 부부의 침실을 빠져나가는 걸 눈치챘다. 이때 니시아는 모멸을 느꼈다. 헤로도토스는 “리디아 인은 남자도 벗은 몸을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하물며 여자가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벗은 몸을 보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이게 중요하다. 성적인 추행은 부부 사이에서도 일어나며 남편이든 아내든 원하지 않는 행위는 상대에게 해서도 안 되고 하도록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니시아는 무서운 복수를 다짐한다. 다음 날, 왕비는 기게스를 불러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내 벗은 몸을 봐서 날 욕보였으니 이 자리에서 죽든가, 오늘 밤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든가.” 기게스는 왕의 보디‘가드’였으나 가드guard대신 어택attack을 선택,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니시아까지 부인으로 삼았다. 이쯤 되면 기게스의 선택인지, 니시아의 선택인지 헛갈리는데 나로서는 이 모든 게 왕비님의 계획이었다는 느낌이다.      


다시 부부의 세계로 돌아가자. 드라마 부부의 세계뿐 아니라 현실의 부부 세계에서 외도는 비일비재하다.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마찬가지다. 백년해로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진실하다. 진실하게 속인다. 5~60년 살면서 단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 소설가 장정일이 2018년 6월 27일 자 한국일보에 쓴 칼럼의 한 대목으로 대신하고 싶다. 당시 한 여배우가 유력 정치인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랑 잤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 스캔들은 그녀가 과거의 연인이었다고 지목한 남자에게 ‘자신과 사귄 적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실토하라는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저런 압박에 불응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헤어진 연인 모두에게 보장된 ‘천부 인권’이다.     


부부 사이라 해도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일정을 장악하려 하지 마라. 다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했는지 대충 들었으면 잊어라. 증거 찾지 말고 증명하지 말라. 흥신소, 탐정, 미행, 알바 써서 뒤 캐기...이런 거 하지 마라. 다친다. 그것도 크게 다친다. [부부의 세계] 마지막 회에서 지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아프게 곱씹으면서 그 아픔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매일을 견디다 보면, 어쩌면 구원처럼 찾아와줄지도 모른다.”

무엇이 찾아온다는 걸까. 마음의 평화겠지. 부부 사이에 진실을 털어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남편 혹은 아내 개인의 심적 평온이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좋은 아내는 남편이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은 모른 척 한다.”고 말했다. (몸이란 인간이 워낙 비밀이 많았다. 동성애에 양성애에 외도까지. 에휴...) 하여간 배우자 휴대 전화 비번 같은 거 풀려 하지 마라. 벌써 비번 풀었다고?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명로진 지음, 오늘도 다행히 부부입니다 중에서, 아침의 정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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