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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로진 Nov 26. 2015

나무를 껴안고 숨을 나누라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가게 하는 책, 장자

9 to 6 직장인을 위한 고전 읽기 05 장자 <장자>

나비처럼 자유롭게    


 중국 고대사의 태평시대를 이끈 전설적 인물이 요-순 임금인데 이들은 <장자>에 자주 등장합니다. 유가의 저서에서 요순 임금은 성인의 대명사입니다만 장자는 요임금마저 코미디의 주제로 삼습니다. 다음은 <장자> [천지]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루는 요 임금이 화華 지방에 놀러 갔는데 이곳 국경을 지키는 관리가 말했다.

 “아, 임금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고 총명하고 우아하시다. 그분의 감화의 빛은 온 세상에 퍼져 하늘과 땅에 이르렀다’고. 이렇게 뵈오니 임금님은 소문대로 정말 성인이시옵니다. 제가 임금님의 장수를 빌겠습니다.”

요 임금이 말했다.

“됐소, 사양하겠소.”

“그럼 부자가 되시라고 빌겠습니다.”

“됐소, 사양하겠소.”

“그럼 아드님을 많이 낳으시라고 빌겠습니다.”

“됐소, 그것도 사양하겠소.”

국경 지기가 말했다.

“예로부터 장수와 부귀와 다산은 모두가 바라는 일인데 어찌 사양하십니까?”

“오래 살면 욕보는 일이 많고, 부자가 되면 할 일이 많아지고,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오. 이 세 가지는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오.”

“나는 당신이 성인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군요. 오래 살면 신선처럼 도를 닦으면 되고, 부자가 되면 가진 것을 다른 이와 나누면 되고, 아들을 많이 낳으면 그들에게 천하를 위해 각자 할 일을 맡기면 될 것을. 무슨 욕될 일이 있겠습니까?”

 국경지기의 말을 듣고 요임금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요임금이 그에게 말했다.

“모자란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국경지기가 급히 떠나며 말했다.

“(               )”    


 위의 (     ) 안에 들어갈 말은 뭘까요? 살짝 건방 떠는 요임금에게 국경 지기는 뭐라고 했을까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됐소, 사양하겠소!”

 정말 대박이지요? 이건 뭐 [개그콘서트] 저리가라입니다. 이 사건이 신문에 난다면 이런 제목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상대 무시한 요임금에게 통쾌한 한 방! 

-젊은 권력자 요임금, 늙은 국경지기에게 당하다!

-국경지기, 민초를 대변 왕에게 한 마디 “저리 꺼져!”    

 저는 이 대목을 읽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단박에 장자가 좋아졌어요. 장자라는 양반, 진짜 웃깁니다. 다음을 보세요.     

 장자의 친구 조상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조상이 진나라로 갈 때는 수레 몇 대만 타고 갔으나 교섭을 잘 끝마쳐 진나라 임금에게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 백 대를 받았다. 조상이 돌아오다가 장자의 집에 들러 말했다.  

 “여보게, 이렇게 지저분한 골목에 누추한 집에 살 건가? 자네 꼴을 보게. 짚신이나 삼으며 거지처럼 살고 있지 않나? 눈은 푹 들어가고 목은 살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데다 맨날 두통을 앓고 있으니....나 같으면 이렇게 못 사네.”

 장자가 답했다. 

 “진나라 왕은 병이 나서 의사를 부를 때 종기를 터뜨리고 입으로 고름을 빠는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핥아서 고쳐 주면 수레 다섯 대를 준다고 하더군. 치료하는 부위가 더러울수록 수레를 많이 준다던데, 당신은 얼마나 더러운 데를 핥아 주셨나? 수레를 많이도 얻어 왔구먼. 어서 갈 길이나 가시게!” <열어구>    


 야, 요거 참 재미있죠? 마치 국경지기 민초가 요임금에게 하듯, 장자는 부귀영화를 자랑하는 조상에게 면박을 줍니다. 장자 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장자가 살아 돌아와서, 더러운 곳을 핥아주는 자들에게 추상같이 한 마디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리 입이 더러워. 저리 꺼져!”   

  동서양의 많은 작가와 학자가 [장자]의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상징성을 찬미했습니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면만 놓고 보면 현대의 그 어떤 작가도 장자를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장자(BC369~BC 286)는 이름이 주周, 몽蒙지역(지금의 하남성 상구 근방) 출신입니다. 장자는 한 때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말직을 맡았지만 대체로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 자연과 벗하며 살았습니다. 벼슬이 없으니 가난하고 배가 고팠으나 장자 곁에는 그의 지혜를 사랑하는 많은 친구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동양철학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장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무의미하지요.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인 ‘호접몽’을 예로 들어 봅시다.     

 

 어느 날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비는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자신이 장주임을 몰랐다. 문득 깨어 보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건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제물론]    


 장자는 <장자> 전편을 통틀어 이런 인식을 극단까지 몰고 갑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네가 아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너는 나비일지도 모르는데?”라고 묻습니다. 나비는 날개 짓을 할 뿐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나는 나비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이 꿈속의 생시인지, 생시속의 꿈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내 앎이 무지인지 무지가 앎인지. 나는 지금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인지 다만 날개 짓을 하고 있을 뿐인지.....할!

 [장자]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빈 배를 욕하랴?    

 성질 급한 이가 배로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뭔가가 배 뒤에 쿵! 하고 부딪혔습니다. 

 그는 몸이 기우뚱 하며 물에 빠질 뻔 했습니다.

 “뭐야?”하고 돌아보니

 어디선가 빈 배가 떠내려 와 그의 배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그는 곧 조용해져서 다시 자리에 앉아 노를 저었습니다.     

 얼마를 가다 보니 또 다른 배가 와서 부딪혔습니다.

 그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성질 급한 이는 상대를 보고 비켜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않자 두 번 소리쳤고,

 두 번 소리쳐 듣지 않자 이번에는 온갖 욕을 섞어 가며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화를 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앞의 배에는 사람이 없었고 뒤의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우리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산목]*

 *(M.Palmer, 169~170p)    


 아, 좋지 않나요? 저만 좋은가요? 좋지요?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고전이란 게 현대인에게 참 좋은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누구에게 알리는 것도 좋지만 이럴 때는 온전히 내 것으로 삼고 싶습니다. 이 좋음을. 

 ‘빈 배를 욕하랴’ 같은 구절을 만나면 저는 조용히 책을 덮고 숲으로 갑니다. 이 감동을 안고 도저히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최고의 순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만하기에, 또 다른 최고의 순간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리가 제겐 없습니다. 

 저의 집 옆 안산 숲으로 갑니다. 서대문구에서 만들어 놓은 자락길을 따라 숲속 무대를 지나 더 깊은 숲길로 빠집니다. 제법 큰 메타세콰이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숲에서 나무들에게 인사합니다. 나무를 껴안고 눈을 감습니다. 고맙다고 말을 건넵니다. 너희들이 있어서 좋아. 너희가 희생해서 책이 되었잖아. 너희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이순간의 좋음을 누리지 못했을 거야. 잊지 않을게. 헌신을...나무가 나인지 내가 나무인지 모를 상태에서 눈이 젖어 옵니다. 하나가 죽어 썩어 없어져야만 또 다른 하나가 살아난다는 윤회의 가혹함 때문에. 자연을 포옹하고  인사한들 이 슬픔이 사라지겠습니까. 사랑을 줄여야 하나요. 숨 쉬는 것과 숨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덜어내야 하나요. 빈 배가 될 때까지?

 마음을 비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서민 아파트 단지 안에서 찌개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살아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이런 구절이 또 눈에 띕니다.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미혹 아닐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 아닐까? 미녀 여희(麗姬)는 애(艾)라는 곳 변경지기 딸이었네. 진(晉)나라로 데려갈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제물론> (오강남, 121p)    


 여희는 진晉나라 헌공이 여융驪戎(진나라 북서쪽에 유목을 주로 하며 살았던 민족)을 물리치고 납치해 온 여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가 어찌나 예뻤는지 헌공은 나라 일을 잊을 정도였지요. 애 땅에 살던 여희가 진나라에 끌려갈 때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 슬퍼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왕의 후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나도 참 어리석었지.....그 촌구석을 떠나는 게 뭐 그리 서러웠다고 울었나. 지금 여기에선 화려한 궁전에서 모든 걸 다 누리며 살고 있는데.’

 애 땅의 시간들은 삶을 뜻하고 진나라 왕궁은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장자가 묻습니다. ‘죽은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왕궁일지 어떻게 알아?’

 저는 고전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길 좋아합니다. 장자와 친구들이 모여 주막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오이 하나와 탁주 한 사발을 앞에 놓았겠지요. 장자가 여희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이 무릎을 치며 감탄합니다.

“오호. 그렇지. 자네 말이 맞네.”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걸!”

“이보게 장자! 기왕 미인 얘기가 나왔으니 그 ‘미녀와 추녀’ 얘기 한 번 더 해주게.”

장자가 빈 술통을 흔들며 대답합니다.

“허허, 이 사람들 맨 입에 해 달라는 건가?”

“아니지, 아니지. 주모! 여기 돼지고기 삶은 것하고 술 좀 더 가져 오시게.”

술 한 잔을 걸친 장자가 ‘미녀와 추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장자 상상도Ⓒ위키피디아

 양자가 송나라에 갔을 때 여관에 묵었다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둘이었는데 한 사람은 미녀고 다른 한 사람은 추녀였어. 그런데 이 주인 좀 보게. 추하게 생긴 여자를 예뻐하고 아름답게 생긴 여자를 천대하는 거야. 양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여관 주인이 말했다네.

 “저 미인은 스스로 잘났다고 자랑하여 잘난 줄을 모르겠는데, 저 추녀는 스스로 못났다고 여겨 삼가니 오히려 그 못남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양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지.

 “너희들은 명심하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한다고 여기지 않으면 어디 간들 사랑받지 않겠느냐?” <산목>    


미인은 자기의 미를 의식했기에 덕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추녀는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았기에 덕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38장에서 “덕이 있는 사람은 자기 덕을 의식하지 않고, 덕이 없는 사람은 자기 덕을 의식 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대목을 음미하겠습니다. <장자>의 깊은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늪에 사는 보잘 것 없는 꿩은

곡식 한 알을 주워 먹으려면 열 번을 뛰어야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시려면

백 번은 뛰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원하는 모든 것이

눈앞에 있다 해도

꿩은 닭장에 갇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차라리 훨훨 자유로이 날아

스스로 양식을 구하려 한다. [양생주]

(권택영, 45~46p)    



관련도서 <짧고 굵은 고전 읽기>(비즈니스북스)    

http://durl.kr/abp87i    


<참고도서>

오강남, <장자> 현암사 1999

김창환, <장자> 을유문화사 2010

김학주, <장자> 연암서가 2010

안동림, <장자> 현암사 2010

김석환, <장자> 학영사 1999

권택영, <토마스 머튼의 장자의 도> 은행나무 2008

Victor H. Mair, <Wandering on the way :Early Taoist Tales and Parables of Chuang Tzu> Bantam Books 1994

 Burton Watson, <Chuang Tzu :Basic Writing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4

 Martin Palmer, <The Book of Chuang Tzu> Penguin Book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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