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로진 Dec 09. 2015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

-신과 영웅의 세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9 to 6 직장인을 위한 고전 읽기 06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모험과 드라마의 오리지널리티

    

다음은 <일리아스>의 첫 대목입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여러 신들 중에 누가 이 두 사람을 서로 다투고 싸우게 했던가?

레토와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그가 왕에게 노하여 진중에

무서운 역병을 보내니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졌던 것이다.

 그 까닭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 아폴론의 사제

크뤼세스를 모욕했기 때문인 즉......(천병희, 25p)    


 밑줄 친 대목을 보십시오. 수없이 많은 고대 그리스의 지명과 인명, 신들의 이름 때문에 바로 포기하게 되는 책이 <일리아스>입니다. 제가 <일리아스>를 처음 읽을 때도 그 복잡한 명칭들 때문에 몇 번이고 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제 주변인들 중에는 <일리아스> 읽다가 고전이 질려버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리스 신들의 계통을 밝힌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그리스 신화를 가장 잘 정리해 놓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물론 <일리아스>에 어마어마한 주석이 있습니다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읽어도 모릅니다. 보르헤스가 간파했듯이 “세상에 결정판이란 없는 법”이니까요. 그 한 권만으로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책은 없다는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피아노 치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피아노를 전혀 연습하지 않아도 피아노 치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건 사기에 불과합니다. 피아노 치기의 즐거움을 알려면 최소한 1년 정도 피아노를 배워야 합니다. 체르니 40번 정도는 쳐 줘야 즐거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거지요.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우스(브래드 피트)Ⓒ 다음 영화

 고전읽기의 즐거움은 고전의 불친절함 속에 있습니다. 만약 고전이 친절한 책이어서 읽는 족족 이해되고, 너무너무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면 오히려 생명력이 짧았을 겁니다. 쉽게 이해되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닙니다. 고전은 읽으면서 끊임없이 ‘이게 뭐지?’하는 의문과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과 앙금처럼 남는 감동이 휘몰아치는 책입니다. 그 어떤 육체적 쾌락보다도 더한 오르가슴과 정신적 환희의 정수를 주는 존재입니다. 이걸 한 번 느끼고 나면 다른 즐거움이 시시해 집니다. 온갖 매체로 접하게 되는 동영상과는 비교 되지 않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주석이 많고 두꺼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기 어려운 고전 중 하나입니다. <일리아스>는 ‘일리온(Ilion=트로이의 다른 이름)의 노래’라는 뜻처럼 트로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입니다. 조연은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헥토로, 파리스 등입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와 벌이는 복수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호메로스는 서사시의 성격과 요소를 가장 적절하게 사용한 최초의 시인이다. <일리아스>는 단순하고 비극적이다. <오디세이아>는 복잡하고 반전이 있다... 호메로스는 다른 많은 점에서도 칭찬할만하지만 작품 속에서 시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뛰어나다. 그는 짧은 머리말을 하고 나서 바로 등장인물을 내세우는데 모든 등장인물이 성격이 뚜렷하다.”    

 한마디로 호메로스는 캐릭터를 아는 작가였습니다. 작중 인물 중 어느 누구도 무미건조한 자가 없습니다. 가문의 유래, 그의 외모, 습관, 옷의 형태와 무기의 특징 등 디테일이 세세하게 소개 됩니다. 호메로스에게는 그냥 아킬레우스란 없습니다. ‘영광스러운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 가 있을 뿐입니다. 그냥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칭찬을 많이 듣는 오디세우스’ ‘제우스만큼이나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지요. ‘그는 죽었다’가 아니라 ‘적이 던진 돌덩이가 그를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갔다’ ‘청동 칼이 그의 사지를 풀어헤쳤다’ ‘창은 내장 깊숙이 들어와 등으로 솟구쳤으며 곧 그는 무릎이 풀렸다’입니다. ‘그대는 내 창에 찔려 죽을 것이오’가 아니라 ‘여기 이 사람들은 보게 될 것이오. 그대의 검은 피가 내 창끝에서 얼마나 빨리 솟아오르는 지를.’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은 10년 동안 전쟁을 벌입니다. 이 동안에는 신들도 양측으로 갈라져 전쟁에 참여하지요.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의 독선 때문에 파업을 선언한 이후, 전세는 그리스 측에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아가멤논은 꼬리를 내리고 사과하지만 아킬레우스는 꿈쩍도 하지 않지요. 이때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대신해 나가 싸우다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노하여 헥토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트로이 성 앞에서 벌어진 대결에서 아킬레우스가 승리를 거둡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고 트로이 성 앞에서 질질 끌고 다닙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변장을 하고 몰래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습니다. 이후 그리스 군은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전쟁에 승리를 거둡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의 스토리입니다. 다른 영웅들은 고향에 돌아갔으나 오디세우스는 무려 10년 가까이 파도 때문에, 부하들 때문에, 여신들 때문에 떠돌게 됩니다. 결국 고향에 돌아왔으나 정절을 지키며 기다린 페넬로페 곁에는 깡패와 다를 바 없는 귀족들이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축내며 구혼 중이었지요.   아들 텔레마코스는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상태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아들, 충직한 하인 에우마이오스와 함께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페넬로페와 재회합니다. 

영화<트로이>의 한 장면 Ⓒ 다음 영화

 <일리아스>에 비해 <오디세이아>는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틱합니다. ‘주인공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오디세이아>는 인류 최초의 드라마가 틀림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 오디세우스의 유일한 목적인데 고통과 유혹과 목숨을 건 모험을 거치고 나서야 그 목적을 이루게 되니까 말입니다.     

저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를 보면서 기원전 13세기의 그리스 문화에 놀라곤 합니다. <오디세우스> 중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메넬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메넬라오스는 처음부터 그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습니다. 텔레마코스는 메넬라오스의 궁전에 일단 나그네인 척하고 방문을 하는데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칩니다.    


텔레마코스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으리으리한 궁전 안으로 안내되었다.

궁을 쳐다보느라 눈을 즐겁게 한 그들은

윤기 나는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하녀들은 그들을 목욕시켜 주고 올리브유를 발라주었다.

웃옷을 입혀 주고는 따뜻한 망토까지 어깨에 둘러 주었다.

연회장으로 온 둘은 메넬라오스 옆 의자에 앉았다.

주객이 손을 씻고 나서 식탁 앞에 앉았을 때,

가정부가 들어와 빵과 온갖 전채 요리를 내려놓았다.

다른 하인은 온갖 종류의 고기를 썬 접시를 

그들 앞에 갖다 놓고 황금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식사가 준비 되었을 때 붉은 머리의 메넬라오스는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환영합니다. 자, 어서 맛있게 드시오. 그대들이 저녁을 들고 나면

 우리는 그대들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볼 것이오.”

(R.Fagles,125~126p)     


 영화 <트로이>의 메넬라오스는 미스 캐스팅인 거 맞죠? 메넬라오스의 인품이 훌륭한 면도 있지만, 이런 절차는 당시의 풍속이었나 봅니다. 오디세우스가 거지처럼 변장하고 자기 하인인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를 찾아 갔을 때도 에우마이오스는 오디세우스를 이렇게 대접합니다. 일단 손님이 찾아오면 먼저 씻게 하고, 물마시게 하고, 배불리 먹게 한 다음에 물어봅니다. “어디서 온 누구시오”하고. 이런 게 휴머니즘 아닙니까? ‘당신이 누군지 알아야 먹을 것을 주겠소’가 아니라, ‘일단 먼 길에 지쳤을 테니 먹고 목을 축이시오. 그 다음 당신이 누군지 말해도 좋소.’ 설사 상대가 내 편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앙리 뒤낭의 적십자정신은 ‘당신은 적이오, 우리 편이오? 알고 나서 고치겠소’가 아니라 ‘일단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서 적인지 우리 편인지 따지겠소’입니다. 아니, 설사 적이라 해도 무관합니다. 상처를 돌보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인간의 생명=인간 자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본주의는 우리 인류의 정신사 속에서 이렇게 오래전부터 공유되어 왔습니다. 에우마이오스는 오디세우스를 대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그네여! 그대보다 못한 사람이 온다 해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의 보시는 적지만 소중한 것이오.” 

 (천병희, 305p)    


 훌륭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너무 감동했습니다. 모든 나그네와 걸인을 마치 신이 보낸 사람처럼 대접하는 정신. 생판 모르는 남, 재산도 명예도 없는 가난한 자들을 저렇게 대하는 자세는 아마도 인류의 가장 숭고한 유산일 겁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바로 인仁이요, 사랑이요, 자비 아니겠습니까? 법정 스님은 설파하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라고. 친절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종교보다 위대한 가치입니다. 단언하건대 금강경의 진리보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알라의 명령보다 모르는 타인에 대해 베푸는 작은 친절이 더 큰 것입니다.  

영화 <트로이>의 오디세우스(숀 빈)Ⓒ 다음 영화

 고전을 읽다보면, 대단한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종종 감동을 얻곤 합니다. 그래서 고전은 완역본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그리스 고전 번역은 참으로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그리스어 원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 놓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 판본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숲) 정도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인문고전을 제대로 번역하는 집단은 우리나라에서 정암학당이 거의 유일합니다.  

 줄거리만 알려고 읽으면 세세한 것들을 다 놓치고 맙니다. 편집해서 번역하거나 발췌해 놓은 버전에서는 디테일을 건질 수 없습니다.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 (Mies van des Rohe 1886-1969)는 말했습니다.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God is in detail.”라고. 모든 위대한 고전은 문학성이 있기에 위대합니다. 문학성은 디테일 속에 있습니다. ‘에우마이오스는 오디세우스를 대접했다’란 텍스트에는 문학성이 없습니다만, ‘에우마이오스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보시는 적지만 소중한 것이오”라고 말하면서 오디세우스를 대접했다.’라는 문장 속에는 문학성이 있습니다. 메넬라오스가 텔레마코스를 맞이해 오디세우스 가문을 더럽히는 구혼자들을 무찌르는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은 문학이 될 수 없고 오로지 세세하고 소소한 정황들이 그려져야 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명작과 범작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입니다. 디테일의 완성 없는 명작은 없습니다. 


 호메로스의 이런 묘사 때문에, 풍부한 표현 때문에, 극적인 구조와 인물들의 캐릭터 때문에 그의 작품은 3천년 넘게 인류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모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즐기는 영화, 드라마, 게임과 동영상에 고난을 극복하는 어드벤처가 등장한다면 그 저작권은 분명 호메로스에게 있습니다. 서양 문학의 원류인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관련도서 <짧고 굵은 고전 읽기>(비즈니스북스)    

http://durl.kr/abp87i    


<참고문헌>

천병희, <일리아스> 숲 2007

천병희, <오뒷세이아> 숲 2006

Robert Fagles, <The Odyssey> Penguin Books 1996 

작가의 이전글 나무를 껴안고 숨을 나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