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야쿠자 국가의 오야붕들과 꼬붕들 이야기
[남산의 부장들] (연출 우민호) 포스터
나는 신작 에세이집 [전지적 불평등 시점](더퀘스천)에 "80년대 고교생을 모델로 한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영화가 불편하다."고 썼다. 허구가 아니라 다큐로 읽혀서다. 그 시대 학교 폭력의 아픔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맞고 동급생들과 치받고, 이 상처를 다시 하급생에게 풀고...폭력은 학교에서 일상이었다.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남산의 부장들](연출 우민호)역시 이런 기시감을 안겨준다. 답답했던 1970년대의 분위기가 한꺼번에 나를 덥친다.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죄어들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구치소였고 국민은 자유를 저당잡힌 연금자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을 했던 자들이, 대표자를 중심으로 한 줌의 독재당을 만들고 대한민국이 그 당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일부 정치인, 극소수의 언론인,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재벌들이 뭉쳐 노예제 사회를 형성했다. 연금자들은 알량한 식단에 만족한 채 하층 계급을 구성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공화당 독재 시대의 대한민국은 박정희라는 오야붕을 중심으로 한 조폭 사회에 불과했다.
오야붕의 마음에 들지 않는 꼬붕은 제거당했다. 일반 국민은 꼬붕 아래 꼬붕, 시다바리 밑의 시다바리였다.(이 일본어 남용을 용서하시길.) 꼬붕 아래 꼬붕들과 시다바리 아래 시다바리들은 오야붕이 신이라도 된 듯 대단하다고 여겼다. 깡패 두목에 불과했던 박정희와 전두환을 2020년 현재에도 마음 속의 하느님으로 여기는 이들이 대한민국에는 존재한다.
우민호 감독은 그 환상을 단 번에 깨뜨린다. 김재규가 김형욱을 암살했다고 보고하자 박정희의 첫 마디가 이랬다.
"그럼 돈은? 그 자식이 가져간 돈이나 가져 와. 난 그 자식 죽든 말든 상관 없어."
10.26 사태가 끝나고 청와대 금고를 털어가는 이는 찌질한 전두환이다. 실제 전두환은 청와대 금고를 털어 그 중 일부를 박근혜에게 줬다. 영화 상에서 전두환은 박정희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꼬붕으로 나온다. 이 자에게도 중요한 건 돈이었다.
1961~1979 한국 야쿠자 두목으로 행세한 다카키 마사오. 한국명 박정희(1917~1979)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나라나 국민은 안중에 없었고 첫째 관심사는 쾌락, 둘째 관심사는 정권 유지, 셋째 관심사는 꼬붕 관리였다. 우민호 감독이 이병헌이 분한 김재규라는 인물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다.
김규평이라는 극중 이름으로 나오는 김재규는 이 작품에서 고뇌한다. 그 자신 유신의 핵심 세력이었지만 만시지탄,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한다. 영화는 그 고민에 집중했다. 비록 김재규가 유신 정권 유지에 일정한 책임이 있지만 차지철같은 무지한 간신으로 주변에 벽을 친 상황에서 '야당과 협조하고' '국민의 안위를 생각해서 계엄령은 철회하고' '대국적으로 정치를 할 것'을 오야인 박정희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복잡한 권력 암투와 마치 차기를 약속하는 듯한 박정희의 술수,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 속에서 무산된다. 무엇보다 오야붕의 마음이 전혀 대국적 정치나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에 있지 않다. 꼬붕은 결정해야 한다. 내가 죽을 것인가, 오야를 죽일 것인가. 김재규는 후자를 택했다.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향해 권총의 불을 뿜을 때, 입만 살아서 큰 소리 치는 차지철에게 독일제 발터PPK를 발사할 때, 뭣도 아닌 양아치 새끼들을 주인으로 알고 내내 가슴 졸이며 살았던 노예 한 사람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1979년 야쿠자 오야붕 박정희를 제거한 한국의 스팔타쿠스 김재규 장군 ⓒ나무위키
김재규가 거사를 한 지 41년이 지났다. 이제 그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니 [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로 이미 그는 복권되었는지도 모른다. 로마시대 노예를 해방하려 했던 스팔타쿠스처럼, 김재규는 불쌍한 한국민을 위해 한 몸을 던졌다. 영화는 그의 심리와 논리와 정당성을 디테일한 구성과 목죄는 미장센으로 탁월하게 구현해 냈다. 오늘 밤은 한국의 스팔타쿠스를 위해 한 잔 하고 싶다.
인디라이터 명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