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죽이고 단명할까, 화내고 오래 살까.
1> 화내지 않으리
탕임금은 대야에 이렇게 써 놓았다.
“만약 어느 날 새로워졌다면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리라.”
[대학] 전2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주는 교훈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떤 사람이 탁월하다면 그건 습관의 결과다.”라고 말했다. 현대의 자기계발서에서는 “루틴이 성공을 만든다”고 패러디한다. 습관을 뜻하는 에토스ethos는 곧 성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Ethos anthropo daimon- 성격이 인간의 운명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참으로 명쾌하다. 성격이 운명이다. 더러운 성격을 가진 놈은 더러운 운명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성격을 가진 자는 아름다운 운명을 갖게 된다. 만약 누군가 성격이 더러운데 아직 운명이 더럽지 않다면? 공자의 예언을 믿어라.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 행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인생은 곧다.
곧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면 요행히 재앙을 면하고 있는 것뿐이다.”
[논어] 옹야
나는 이 문장을 좌우명 삼아 살아간다. 인간은 역지사지 안 되는 존재이기에 나 아닌 타인에게 이 명제를 적용한다. 지저분하게 뒷담화를 까면서 나를 모욕한 A씨! 당신 말이야, 똑바로 살아! 똑바로 살지 않는데 아직 잘살고 있다고? 요행히 재앙을 면하고 있는 것뿐이야.
독자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여러분을 망친 그자가 아직 잘살고 있는가? 요행히 재앙을 면하고 있을 뿐이다. 곧 망한다. 성격이 개떡 같으니 운명도 개떡 같을 거다. 인류의 성현들이 한 말이니 믿자.
습관이 곧 성격이라고 간파한 그리스 철학은 옳다. 우리는 타고난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우리 성격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습관을 통해 탁월함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좋은 예가 탕임금이다. 기원전 1,700 년 경 은나라를 건국한 탕임금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이 있는 이였다. [사기 본기]에 그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있다.
탕이 교외에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사방에 그물을 쳐 놓고 “여기 있는 새가 죄다 나한테 걸리게 해 주십시오”하며 기도했다. 탕이 듣고 “어허, 다 잡으려 하다니.” 하고 3면의 그물을 거두며 말했다. “오른쪽으로 갈 새는 오른쪽으로 가게 하고, 왼쪽으로 가려는 새는 왼쪽으로 가게 하고 운이 나빠 이 그물에 걸리는 놈만 잡게 하소서.”
탕왕이 이런 행동을 하자 사람들은 “덕이 지극하다”며 그를 따랐다. 탕왕은 탐욕을 경계했다. 사방에 그물을 치면 온갖 고기를 다 잡을 것 같지만 결국 인심을 잃는다. 탕왕은 과감히 4분의 3을 포기함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이런 그도 왕에 오르고 보니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매일 흔들렸다. 왜?
탕왕에 대한 기록은 [사기 본기]와 [서경]에 몇 줄 남아 있을 뿐이다. 탕왕이 은나라를 세울 때 큰 공을 세운 신하가 이윤이다. 이윤은 탕왕이 죽고 탕왕의 아들 태정이 죽고 태정의 동생 외병이 죽고 외병의 동생 중임이 죽을 때까지도 살아있었다. 앞서 예로 든 이들이 모두 은나라 왕(태정은 제외. 그는 태자 시절에 사망함)인데 왕위는 돌고 돌아 탕왕의 손자이자 태정의 장자 태갑에게 이어진다. [서경]에는 이윤이 원로대신으로서 태갑에게 훈시하는 말이 길게 이어진다.
“선왕을 본받아 덕을 닦고 어른을 공경하고 여자를 멀리하고 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고...블라블라”
[서경]에 기록된 은나라 역사 전반부의 상당량이 이윤의 훈계다. 태갑이 말을 듣지 않자 이윤은 그를 3년 동안 동궁에 유폐시키기까지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역모인데 이윤은 왕위를 차지하려는 의사가 없었기에 태갑을 다시 불러 타이르고 또 타이른다. 다행히 태갑이 개과천선, 정치를 잘하게 되자 이윤은 은퇴한다. (은퇴하면서 태갑에게 했던 훈계가 또 길게 기록되어 있다. 이 양반 참...)
이윤은 어떤 신하였을까? 다른 기록에 의해 유추해 보자. [여씨춘추]에는 이윤의 탄생설화가 실려 있다. 이윤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신령이 나타나 “이수에 절구가 떠내려오면 동쪽으로 달리라”는 계시를 내렸다. 다음 날 과연 이수에 절구통이 떠내려왔다. 이윤의 어머니는 동쪽으로 10리를 달리다 뒤돌아보았는데 마을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순간, 그녀는 뽕나무로 변했다. 뽕나무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와서 보니 이윤이 있더라는 것이다.
탄생설화는 대개 고대 국가를 건국한 인물에 뒤따른다. 왕이 아닌 이윤에게 이런 전설이 덧붙여진다는 건 이윤이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다는 반증이다. [여씨 춘추]에는 이윤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또 다른 일화가 실려 있다. 탕임금이 이윤에게 “어떻게 하면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이윤이 “천하를 다스리려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거다. 한 마디로 “너나 잘하세요”다. 왕 입장에서 보면 참 싸가지 없는 대답이다.
탕임금 천을은 덕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으니 분노조절을 잘 했을 거다. 하지만 입만 열면 훈계하는 이윤이 고울 리가 없다. 어제 한 얘기를 또 하고 아까 한 지적을 다시 하고...[당신이 옳다]를 쓴 정혜신 선생은 “충⦁조⦁평⦁판만 안 해도 공감의 반은 완성된다”고 했다. 입만 열면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는 이윤이 달가웠을까? 하도 잔소리를 해 대니까 천을은 세수대야에 이런 글을 써 놓았다.
‘만약 오늘 하루 화를 안 냈다면 굿~
매일 매일 새로워지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탕왕은 똑똑한 신하가 매일 내지르는 간언에 지칠 때 마다 세수를 했다. 대야에 써 있는 ‘일일신 우일신’을 보며 화를 삭였다. 소리 지르고 싶고 벌주고 싶고 내치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저 새끼 죽일까?”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구를 되새겼다. 분노 조절에 성공한 탕왕은 성군으로 남았지만 재위 13년 만에 죽었다. 이윤은? 탕왕을 보내고 세 왕을 섬기면서 장수했다.
화 죽이고 단명할까, 화내고 오래 살까.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