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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May 03. 2018

우리는 왜 일하는가

오너와 직원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 배리 슈워츠 지음, 문학동네 

그저께는 노동절이었다. 휴직 중인 나는 불과 두 달 전까지 노동자였다. 매일매일이 휴일인 요즘, 얻어걸린 듯한 노동절 '휴무'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주말에 줄 서 사 먹던 맛집에서 줄도 안 서고 살 수 있단 것 정도. 


만 15년 꽉 채워 회사를 다녔다. 연봉은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보다 높은 대기업이지만,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 논했지만, 내 노동이 신성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서글픈 일이다. 내가 내 일을 좋아하지 않는단 사실은.

유시민 작가가 행복의 요소 네 가지로 '일', '사랑', '놀이', '연대'를 들었다. '일'쪽에서는 불행한 대한민국 직장인 중 일인. 


예전 어느 나라의 둘째 왕자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첫째 형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철창 간격은 좁지 않았고, 형은 몇 끼를 굶어 살을 빼면 빠져나올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감옥에 들이는 음식들이 어찌나 맛있는지 형은 그 음식을 먹으며 감옥에서 계속 지내다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음식을 직장인의 월급에 비유하는 이야기였다. 씁쓸한 이야기인데 꽤 오래 여운이 남았다.  


직장인의 꿈은 무엇일까? 주변에 물어보면 직장인의 '꽃'이라고 하는 임원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천천히 올라가서 다니는 데 까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임원 달고 고생하냐'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휴직 중인데도 서점에서 "우리는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구매하게 된 이유는 15년의 직장생활에서도 '월급'외에 다른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애덤 스미스의 '인간은 돈을 위해 일한다'는 인센티브 최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그렇게 생각할 뿐 인간은 더 가치 있는 일에 '기꺼이 헌신' 한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도록 업무환경을 설계해 준다면 인간 본성을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근로자는 행복하게 일하고, 고객과 고용주에게 만족감을 주는 선순환(포지티브 썸)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일을 설계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한다. 

WHY :일의 목적, 소명의식, 영감을 주고 있는가? 

WHAT : 포지티브 썸을 제공하여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가? 

HOW : 재량권과 통제권을 주고 있는가?   

당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조직에서 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p51
일에서 재량권, 몰입, 의미를 박탈하면 사람들은 만족감을 덜 느끼게 되고, 일을 하는 데 만족감을 덜 느낄수록 그 일을 잘 못하게 된다.
p62



회사에서는 KPI(Key Performance Index) 관리 업무를 주로 했다. 

직원들이 Rule대로 업무를 하고 있는지 평가, 점검하고 개선점을 발굴해 조치하는 일이다.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올해의 핵심업무' 가 정해지면 그에 맞게 KPI 로직을 짜고 숫자를 산출했다. 


자율성을 주고 운신의 폭을 주어야 숫자가 현실대로 드러나고 개선점이 보인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상사는 어떻게든 '쪼아서' 100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수천 명이 하는 일이 어떻게 100이 되나. 

이리 틀어막고 저리 틀어막으면 꼼수가 발생하고 본질이 흐려진다. 개선점을 찾기 위한 본래 목적은 없어지고, 일을 위한 일이 만들어진다. 일을 위한 일로 써 만들어낸 100이라는 숫자는 의미를 잃고 허공을 맴돈다. 상징적인 숫자를 맞추기 위해 '더해진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의 욕받이가 되는 건 나의 몫이다. 


어떤 KPI는 모든 직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신만 이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고, 모든 직원이 규칙과 양심에 따라 일을 한다고, 실수를 막아주는 관점에서 일을 개선해주는 게 나의 일이라고' 믿어왔다. 결국 나는 상사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심하게 찍힌 듯하다. 


이 책에서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는 근거를 찾아서 '지금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그분께 익명으로라도 행운의 편지처럼 보내고 싶다. 그리고 혹시 내가 고용주가 되는 날이 온다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효율성이 아니고 포지티브 썸이다. 의미있는 일을 위하여. 

만약 당신의 직원들에게 현명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구체적인 행동규칙을 도입할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은 결코 현명한 판단력을 계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당신이 감독하고 있는 직원들의 능력 부족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입증되고, 이것은 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더 많은 규칙들을 시행하고 더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한다. 

또한 당신이 만약 직원들이 올바른 목표를 좇아서 맡은 일을 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들이 올바르게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인센티브들을 도입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올바른 행동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그들이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모든 동기를 약화시킨다. 다시 한번, 당신의 확신 부족이 입증된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키우는 방법들을 시행하는 대신, 그러한 욕구는 한 조직을 세우고 운영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요소라고 확신한 책임자는 오히려 그것들을 약화시키는 관행들을 실시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에서, 법정에서, 진료실에서, 의미 있는 일은 모두 사라진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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