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4차 산업혁명, 비트 코인 몇 년 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뉴스와 서점가에서 이슈다. 여러 곳에서 추천도서로 언급된 책이라 벼르고만 있다가 이 시점에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읽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과학과 전쟁이 결부되면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위협을 인식했다.
1920~30년대에 걸친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의 대두와 연결시켜 과학의 노예로 전락하여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는 비인간적 지옥을 묘사한 책
헉슬리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모든 진보는 희생의 대가를 동반한다. "
19세기 교육의 보급은 민주주의 보편화가 아닌 전체주의 사상의 선전을 편리하게 했고, 공업/농업의 발달은 대지를 고갈시켰다. 과학 기술의 진보는 무엇을 희생할 것 같은가 되돌아 보게 한다.
역설적인 제목 '멋진 신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정과 행복'이 '불안과 자유'보다 가치 있는 일인가?
'시와 종교와 진리'가 최고의 선인가?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된다. 버나드처럼 경계에 서있는 것 처럼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버나드와 레니나가 변화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인것, 존과 헬름홀트가 체제를 혁명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게 느껴졌으나, 그게 현실적이다. 나도 그러하다.
모른채 행복한 것과 알고 불행한 것 난 그 둘중 무엇을 택할것인가.
소장이 격언을 말하듯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이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야 -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모든 조건반사적 단련이 목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야.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p28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p29
암시의 총계는 아이들의 의식 자체로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이들의 의식 뿐만이 아닙니다. 성인들의 의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 평생을 통해 그렇게 됩니다. 판단하고 욕망하고 결정하는 의식 - 바로 그것이 그러한 암시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암시는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암시인 것입니다. p47
소장이 말하는 것을 살면서 경계해야 한다. 의심하고 경계하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아야 겠다.
내 판단과 욕망과 결정이 오롯이 나에 의한 것인지 깨어 있어야 겠다.
"지금의 당신은 맬파이스에서 만났을 때와 비슷하군요"
"다시 불행해졌기 때문이야"
"나 같으면 당신이 누렸던 거짓되고 기만적인 행복을 맛보느니 차라리 불행쪽을 택하겠습니다"
행복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어느 정도 불행해도 산다는 것은 온몸으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하층계급의 작업시간을 하루 세, 네시간으로 줄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그네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세시간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p343
나도 쉴 때 느끼는 강박관념이 있다. 무엇을 해야하고 저것을 해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