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바람처럼 Aug 27. 2018

남편 관찰일기 180827

연애 때는 안 그랬는데?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을 차려주던지, 차를 끓여주던지 그러면 안돼? 왜 꼭 나보다 늦게 일어나?”


휴직 후 (내가 기억하기로) 석 달 동안은 아침밥을 챙겨주었는데 다이어트하겠다고 회사에 가서 샐러드 먹겠다던 남편이 느닷없이 배웅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왜 그런 걸까?


요즘 들어 시간이 많이 생긴 나는 남편에 대해 또 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이 남자 대체 왜 이러지?’, ‘연애 때는 안 그랬는데?’ 싶을 때가 꽤 있다. 콩깍지가 씌어서 안 보였던 걸까? 그냥 모른 척 지나쳐 왔던 걸까? 4년 연애기간, 3년 결혼기간 동안 한 번도 몰랐다면 그가 연기를 너무 잘했거나 내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이 흘러왔기 때문 둘 중 하나겠지만 그는 연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다. 이번 참에 그를 관찰해보고 나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하겠지만 절대 불가능한 것도 안다. 노력을 해보자.


그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든다. 나는 대체로 잠이 많고 아침잠은 더 많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주말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짜증이 늘어난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집순이다. 두 시간 이상 차를 타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매사에 진지하다. 모든 문제를 지나치게(내 생각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고민한다. 나는 대체로 가볍게 넘기는 편이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기도 한다. 나도 알고 있고 반성하는 부분이기는 한데 갈등을 회피하고 당장의 불편함을 모면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그는 감정 굴곡이 나보다 심하다. 공대생이라기보다 예술가적 예민함을 가졌다. 나는 그보다는 평온하다. 그의 생각에 나는 무디다.

대체로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그의 예민함이 발생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낼 촉이 나에게 없는 것.

그의 생각에는 우리 사이에 생기는 대부분의 트러블은 내가 유발한 것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의 예민함이 원인이다.


오늘은 왜 그랬을까?

주말에 드라이브하자는 걸 거절하고 동네에서 영화 보고 외식을 했다. 아마 답답했나 보다.

그는 어제 관리비를 내고, 나에게는 대출 상환금과 용돈을 입금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본전 생각을 한다. 가족이건 부부 사이건 그렇다. 그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도 그랬을 거다. 집에서 쉬고 있는 와이프가 늦잠을 자고 아침밥도 안 차려주는 데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비까지 와서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오늘은 업체 출장이 잡혀있어 차도 끌고 가야 하는데 주차장은 사무실에서 한참 멀다고 투덜인 직후다.


예전 타로점 보시는 분이 말하길, 밥상 차리는 게 뭐가 어렵냐, 하기 어려우면 반찬가게에서 사다 차린 척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중요한 건 맞춰 주는 것이지 반찬이 아니라고.

그가 나에게 던진 메시지는 아침밥이 아니라 나 힘들다는 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글을 쓰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