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4. 2018

왜 글을 쓰는가

왜 브런치에 쓰는가

지난 1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저절로 흐르던 때가 있었다.

뱃속 아이를 떠나보낸 후 2주간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서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어느 날 남편은 운동화 빨래를 부탁했다. 잠시라도 외출하는 구실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으리라. 빨래방에 하루에 한 켤레의 운동화와 오백 원짜리 동전 몇 개를 가지고 외출을 했다.


빨래방 맞은편에 작은 카페가 있다. 운동화를 세탁기에 넣어두고 카페에 들어가 탈수기로 옮길 타이밍을 보곤 했다. 책 한 권씩 가지고 가긴 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책 맨 앞표지에 주절주절 마음속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또 훌쩍훌쩍, 그 조용한 카페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참아냈다.


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소멸될게 분명했다." 생존의 글쓰기. p27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 p34
기억 복구 작업인 글쓰기는 과거의 회상이면서 현재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p185
                                                                                              
-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를 지킬 보호막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밤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노동자가 책을 읽고 쓴다는 것은 노동자가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생각한다. 고니는 말한다 "이제 우리의 슬픔은 최고이다. 왜냐하면 그 슬픔이 고찰되기 때문이다." p189

- 읽기의 말들, 박총 지음

글쓰기를 통해 슬픔을 슬픔으로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슬픔을 고찰을 통해 이겨내고, 일어서고자 한다.

명로진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 나의 어린 시절' 에 대해 써 온 숙제를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첫 날 첫 수업이라 긴장되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글을 소리내어 읽어 내려가다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눈물이 흘렀다. 가슴 속에 응어리 졌던 게 터져나오는 거라 했다. 글쓰기는 마음의 연고, 치유제라고 하신 말씀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티븐 킹은 이런 말을 했다. 글쓰기는 내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위화 p82

- 아침 글쓰기의 힘, 할 엘로드 지음

더 나아가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밝고 즐겁게,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작가 김영하가 기록한다는 것은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라 했다. 일 년간의 휴식기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여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여행하고 빈둥거리고 사색하고 책을 보고 공상에 잠기고 그 시간들을 줄줄이 엮어 글로 남기고자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들을 보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 p80

- 읽기의 말들, 박총 지음



왜 브런치에 쓰는가?

다른 여러 곳을 생각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이미 내가 노출되어 있는 곳에서는 완벽히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곳에서 쓰고 싶었다. 기존의 나와 글쓰는 나를 엮지 않고, 추측하지 않는 곳에서 쓰고 싶었다. 언제까지 내 정체가 보안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오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팽이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