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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0. 2018

달팽이처럼

보편적이지만 느린 삶

  넌 십 년을 늦게 사는구나... 하며 나의 연애사에 함께 설레어했던,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어떤 충고를 하면 알았다고 하고 5년은 걸린다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삶을 사는 내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나도 궁금해졌다.


첫 연애는 32살 때였고, 두 번째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기까지는 5년이 걸렸고, 38살에 결혼해 마흔 느지막한 겨울에 임신하였다.

주위 빠른 친구들에 비하면 정말 10년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인생의 모든 새로운 문을 열기 전, 문 앞에서 한참을 생각 아니 고민한다.

내가 연애를 해도 괜찮을까?

결혼해도 괜찮을까?

엄마가 되어도 괜찮을까?

이 의문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앞섬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격심사이기도 하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결국 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를 불러온 듯싶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리다 시간이 흘러버린 후에야,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건넌 것을 보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한 발을 내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보편적인 삶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다.  '난 다르게 살 거야!' ' 난 저들과는 달라!'라는 허영심에 방향을 틀었다가 소심한 멘탈 탓에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비혼 , 딩크족이란 것은  결연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고 버텨내기 힘들 것 같았다. 나의 이 유리 같은 멘탈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와르르 무너져 버리니까.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고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나갈까.. 그런 사람들을 경이롭게 바라볼 뿐 난 보편적인 삶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낀다.

 

그렇다면 그 느릿느릿 걸어온 5년, 10년은 잃어버린 세월이기만 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해지니까 포장을 해보자면..

누구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고

그 속에서 많은 마음의 준비를 했고 ( 물론 시행착오는 속도와 상관없이 겪게 되는 듯하다 )

이런 삶 저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남친이 없는 사람의 외로운 크리스마스와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의 스트레스와

아이 없는 아줌마의 처연한 마음과 기다림까지..

그런 사람들 앞에서 어떤 말이 필요한지 위로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에 내가 즐긴 명절 때 갔던 해외여행과 공연 관람과 2년간 신혼생활은 덤이다.

10년 느리면 어떤가 10년 더 오래 살면 되지 라고 작은 위안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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