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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0. 2018

착한 사람 콤플렉스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스스로 편한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기를 빨리고 집에 와서 혼자 충전하는 스타일이다.

3명 이상의 대화에서 나는 주로 듣거나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한다. 내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진 않는다. 이유는 그들의 관심사와 내 관심사의 교집합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안물 안궁'인데 굳이 하는 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편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새로 사귄 사람들과 모임에서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들 또한 남의 눈치와 반응을 살피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기도 한다. 아마 나의 리액션이 시간이 갈수록 기의 방전만큼 소멸되어 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 대한 배려가 큰 사람들 일수록, 또한 나와 비슷한 성향일수록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발언권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아지는 게 아닌 뺏고 빼앗기는 대화는 나에게는 세상 불편한 자리다. 논쟁 같은 것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인디언들의 부족회의에서는 지팡이를 쥔 사람만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발언권을 주고 누가 주도권을 가져가지 않게 하는 제도다. 현대 사회에도 저런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라고 하는데 모든 대화에 손석희 같은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니 나에게는 모든 회의가 넘어야 할 산이다.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경우는 일대일의 만남이면서 십 년 이상의 지기인 경우에 불과하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명확한 교집합이 존재하고 그 간의 세월 동안 서로에 대해 교감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도 물론 발화량이 비슷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공감이 가는 대화,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대화, 영감을 주는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기가 충전된다. 이것은 말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 예를 들어 글이라던지 축적된 감정의 공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하나 고민이 생겼다. 나와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었고 일대일로 엮인 사람들과의 대화가 기 빨리고 즐겁지 않아졌다. 원인은 그간 나를 많이 오픈하지 않고 공감하는 척(?)한 나의 리액션 때문인 건가. 혹은  항상 들어주기만 하고 상담자의 역할을 해오던 내 역할에 그만 싫증이 난 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건가. 인내심에 한계가 온건가. 등등등..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들은 전에도 그래 왔다. 나와 교감이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나의 공감 아닌 공감과 추임새를 통해 위로받아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 좀 싫증이 났나 보다. 친구와의 관계가 우선이던 시기를 지나 내 가족이 우선인 시기가 되고 나의 에너지를 집중할 우선수위가 바뀌기 때문인가 보다.


그렇다면 나를 바꾸어 이 기빨리는 관계가 즐거운 관계로 개선될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퀘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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