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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ug 28. 2018

남편 관찰일기 180828

그와 나의 수많은 차이점


그는 예민함에 비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 많은 감정을 느끼고 불편해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른스럽지 못하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뱉지 않고 오랫동안 묵혀둔 안 좋은 감정들은 없어지지 않고 나에게 보내는 일상의 언어에 묻어 나온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생각하는 것에 비해 그것들 말로 정리해서 내보내는 데 서툴다. 상대의 말을 듣고 리액션을 하는 것도 느린 편이다. 상대의 말의 뜻을 생각하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답을 할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는 리액션을 기다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리액션을 좋아한다.) 나의 느린 타이밍은 그의 인내심을 넘어선다. 그는 거기서 조금씩 실망을 해온 듯하다.


그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을 꽤 오래 연습한 듯하다. 상대도 그러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나는 의외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약하다.(는 것을 그와의 관계를 통해 알았다.) 보통의 대화에서 그는 저만치 가 있지만 나는 여기에 머물러 있다. 기승전결 중에 그가 ‘결’을 말할 때 나는 그가 말하지 않고 건너뛴 ‘기’나 ‘승’이 궁금해 답답하고,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 모양이다.


그가 짜증이 났을 때 시간을 주면 수그러든다. 그것이 혼자 삭히기 때문인지 내 입장을 이해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전자라는 생각이 든다. 짜증을 낸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하며 나에게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해결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풀어야 할 숙제다.

 

어떤 사안에 대해 깊게, 끝까지,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남편의 짜증을 지나쳐 버렸고 모르는 척 했고 그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다. 그에게는 나에게 보냈던 수많은 발신 신호가 쌓여있고 나에게는 모든 신호가 처음인 듯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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